

〈만약 내가 진짜라면〉은 1979년 사예신이 배우 리서우청(李守成), 야오밍더(跳明德)와 함께 구상하고 주 집필을 맡았던 작품이다. 고골의 희곡 〈감찰관〉의 영향을 갚게 받은 이 작품은 문화대혁명 시기 상산하향운동의 일환으로 농촌에서 생활하던 지식청년 리샤오장이 고위간부의 자제를 사칭하면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이다. 그의 거짓 신분은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연극 한 편을 보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은 그가 그렇게 원하던 도시 복귀를 가능하게 만든다. 한편 그가 여자 친구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든 가짜 마오타이 주는 상관의 환심을 사려던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점점 더 고위계층에게 전달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종국엔 리샤오장의 손에 돌아오게 된다. 특권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입체적이고 치밀한 짜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리다(李達)장군의 자제를 사칭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사기를 당한 사람 중에는 문화계 저명인사와 현직 간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도 연극적인 이 사건을 당시 상하이의 여러 극단이 연극화하고자 하였으나 현직간부가 연루된 탓에 상부 지시가 내려와 결국 아무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예신은 감옥으로 찾아가 그 청년을 인터뷰하고 작품을 쓰게 되었다. 발표 당시 중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논쟁적 작품이다.

주인공인 리샤오장은 26세의 청년으로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은 도시의 지식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내 상산 하향 운동을 전개했다고. 농촌의 낙후한 경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는 미명 하에 눈엣가시인 지식인들을 숙청하려는 방법의 일환으로 도모된 상산하향 운동. 이 운동으로 인해 출신 성분이 미약한 리샤오장 역시 농촌에서 고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 당은 몇 년 만 일하면 도시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했으나 리샤오장은 매번 도시로 돌아가는 순번에서 밀리고 만다. 역시 '아버지 뭐 하시냐?'라는 질문의 위력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다. 어느 날 리샤오장은 연극을 보러 갔다가 매진된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분명 표는 없다는데 어떤 사람들은 계속 극장에 들어간다. 홧김에 그는 유력인사를 사칭해 극장에 전화를 한다. "이봐. 나 OOO인데 극장 앞에 문화부장 와 있을 거야. 그 사람 좀 바꿔." 이렇게 전화하면 극장 측은 즉시 표를 들고 VIP들을 기다리고 있는 문화부장을 바꿔준다. 그럼 문화부장은 전화를 건네준 사람이 OOO이 찾으신다는 한마디에 자신이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OOO이라는 확신을 가진단 말씀. "이봐, 문화부장, 내 친구 아들이 지금 극장인데 표가 없다네? 자네가 표를 좀 구해주지. 이름? 장씨야. 장샤오위." 그리고는 극장 앞에서 문화부장을 기다리면 리샤오장은 장샤오위가 되어 연극표를 받을 수 있다. “사기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리샤오장이 사기까지 치면서 관람하려고 했던 연극이 <감찰관>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 감찰관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마침 그 마을을 지나가던 나그네를 감찰관으로 오인한 시장을 비롯한 권력층이 부정과 부패를 숨기기에 급급해 나그네를 VIP 대접하며 심지어는 딸과 결혼까지 시키는 등 아주 배꼽을 빼는 연극이라고 문화부장이 말했던 것이다. 자신이 그 꼴이 될 것을 모르면서 말이다. 어쩌면 리샤오장에겐 문화부장에게 들은 연극의 내용이 이 사기 사건의 트리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홧김에 특권층이나 구할 수 있다는 연극을 공짜로 보려 했던 리샤오장의 거짓말은 극장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아버지 뭐 하시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어 "제 성이 장씨 인데 누구 아들이겠어요?" 했던 것이 사단이었다. 초반 15분 정도는 리샤오장의 거짓말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리샤오장이 잘 되어서 빨리 도시로 돌아오게 되었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고. 고골의 <감찰관>에 등장하는 나그네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고 어떻게 여관에서 도망칠까 고민하던 차에 사람들이 자신을 감찰관이라고 오해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던 속물이었던 것에 비해 리샤오장은 공감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자 친구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려면 농촌에서 일단 올라와야 하기에 리샤오장의 거짓말은 필사적이 된다. 유력인사가 농장에 전화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을 부탁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면 상대방도 또 그런 부탁을 한다는 말이지. 초반에 재미있는 블랙코미디 상황과는 다르게 후반이 지루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후반부는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종국에는 리샤오장의 아버지가 등장할 때까지. 결국 법정에 서게 된 리샤오장은 유력인사 아버지를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아버지는 가짜 아들을 변호해준다. 왜냐하면 리샤오장의 사기는 리샤오장의 잘못 만이 아니며 중국 문화혁명 기간 동안 권력을 휘두르던 4인방의 잔재가 남아 중국을 병들게 하고 청년들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진짜라면 이 모든 일들은 합법이다."라는 리샤오장의 외침. 이 법정 안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유일하게 리샤오장이 유력인사의 아들을 사칭했다는 점뿐이었다. 그가 진짜 유력인사의 아들이었더라면 뇌물과, 청탁과, 비리와 특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리샤오장의 사기보다도 더 심각한 사안은 다뤄지지 않고 리샤오장이 가짜였다는 사실만 위법인 것처럼 다뤄지는 사회, 이것이 비단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리샤오장 같은 진짜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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