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변의 이발소에서 손님이 최신유행 스타일로 이발해줄 것을 청한다. 이발사와 손님이 계속 옛 스타일을 버리고 새 스타일을 찾기 위해서 인간의 달 착륙과 유전자 복제 등 현대의 상징적 사건들을 호출하고 질병, 오염, 테러 등 당면한 상황들을 논의한다. 나그네와 여인이 외부의 변화를 알려주고 현실을 일깨우지만, 실제 이발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세월이 흘러간다. 역설적으로 생태 환경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서 청개구리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고 그 사이 해수면만 점점....

《청개구리》는 작가 궈스싱이 어린 시절 개구리를 잡던 기억과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를 연결하여, 인류가 당면한 환경오염과 생태 문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유쾌할 만큼 재치 있는 언어로 엮어낸 3막 부조리극이다. 2006년 동경 신 국립극장의 요청으로 창작되어 신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예상을 뒤엎는 교묘한 구성에 유머와 해학이 넘쳤다"는 호평을 얻었다. 부조리극의 대가답게 궈스싱이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부조리함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과학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여 화성에 가고 우주를 넘나드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이 오히려 자신의 생존 환경은 지키지 못하여 급속히 파괴되어 가는 지구 위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으니, 이 역시 웃지못할 역설이다. 궈스싱은 어릴 적 여름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며 북경 쓰쥬 성내에서 청개구리 잡던 기억을 되살려 환경 생태 문제를 다루면서, 사람이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 후 중국에서는 2010년 프랑스 국적의 닝춘엔의 연출과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으로, 영춘극사와 북경 희극가 협회가 함께 제작하여 프랑스 공연에 앞서 프랑스 연극제 참가작으로 9극장 행동극장에서 초연되었다. 2015- 6년 연말연시에는 린자오화의 아들 린시유에의 연출로 중국국가화극원에서 공연되어, 다시 한 번 북경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한 해변의 이발소에서 손님이 최신 유행 스타일로 이발해줄 것을 청한다. 이발사와 손님이 계속 옛 스타일을 버리고 새 스타일을 모색하는 동안, 세월이 흐르고 그 사이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고 청정한 환경의 상징인 청개구리는 사라져버린다. 시종 새 스타일을 찾으려는 이발사와 손님의 모색을 통해 소위 현대의 상징적 사건들이 호출되나, 실제 이발(변화)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역설적으로 생태 환경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서 종말을 향해 간다. 나그네와 여인이 변화를 주지만 그들 역시 쳇바퀴를 돌 뿐이다. 인간의 소외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우화처럼 전개되며, 소격 효과를 운용하여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상당히 다수의 사질적인 인물이 중국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여 서사를 끌어갔던 “한량 삼부작”이나 “존엄 삼부작”과 달리 《청개구리〉는 이발사, 손님, 여자, 나그네 단지 4명의 아주 모호하고 중성적이며 추상화된 인물들이 극을 끌어간다. 배경도 이전의 북경색이 강한 작품들과 달리 시간과 공간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 중성적인 모호함이 두드러진다.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와 해수면 상승 문제가 일본적이 느낌을 강하게 풍기지만, 그 세계 인식은 단순히 일본적이라기보다 동아시아 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고 테러와 생태환경, 지구 온난화, 비 자녀 경향 등 인류가 당면한 존재의 곤경은 보편성을 갖는 것이어서 매우 큰 상징적 함의를 갖는다. 계속 해수면이 상승되어 가는 큰 흐름 속에서, 이발로 상징되는 삶의 추구가 계절의 순환과 그에 따른 농사 행위와 마찬가지로 몇 번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며 반복되는 구조는, 논리나 기억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불완전한 인간의 절대 한계와 함께 회귀성의 본질을 제시한다. 과학기술이 신의 영역에 닿았다고 할 정도로 발달하였지만, 인간의 우매함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고 계속 반복되는 구조 자체가 인간 존재의 역설이자 부조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새 시대 새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행동이 결여되고 삶에서 이화되어 이발 행위가 공허한 유희가 되어버린 손님과 이발사의 삶의 쳇바퀴에 나그네와 여인이 각기 외부 세계와 현실의 삶을 대변하며 끼어든다. 나그네가 틈입하여 고립된 이들과 세계를 연결시켜보려 하지만 그 쳇바퀴를 멈추거나 바꾸지 못한다. 외부 세계를 향해 인생의 답을 찾으려던 나그네가 고향을 찾으러 돌아오나 이미 고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절의 추이에 따른 여인의 농업 노동을 통해 여인은 현실의 삶을 상징하며 그 추상의 배경이자 관점이 된다. 이성적인 그러나 지극히 비생산적인 세 남성의 추구에 비해, 여성이 사회의 추동력이자 생산의 담보자임을 제시하면서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고 화학 비료를 과도하게 사용하며 나그네를 모방하고 필요에 따라 관점을 바꾸는 무주관성을 비판한다. 이 세계가 이미 서구의 이성적 사고에 기반한 소비적 사회의 가치와 체계로는 구원될 수 없으며 인간 스스로 인간 소외를 조장할 뿐임을 통찰하고 있다.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함으로써만 구원될 수 있다는 인식, 그리고 마치 선을 통해 본질과 만나는 잇사의 하이쿠처럼, 이성적 사고보다 도가의 참으로 돌아가는 반진(退頁), 돈오를 통해 본질을 깨닫는 선(輝)을 제시하고 있다. 론도 형식과 같은 반복 순환 구조를 취하면서 정반합의 단순 노리를 넘어, 변주와 파열을 통해 반복을 초월하는 교묘한 극형식이 효과적으로 내용을 이끌어간다 상식과 일상을 깨는 부조리와 기괴함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해학적인 대사를 통해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관극의 재미를 배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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