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열여덟의 나이에 이유도 모른 채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2년을 보내야 했던 수잔나 케이슨의 자전 수기다.
케이슨은 정신 병원에 갇힌 소녀들의 일상을 통해 사춘기 소녀들의 꿈과 희망과 절망을 유머러스하고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물으며 정신병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편견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정상에서 약간 벗어난 일을 할 때면, 이를테면 하루에 목욕을 두 번 한다거나 밥을 네 끼 먹는다거나 한겨울에 짧은 반팔 셔츠를 입고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런다. “너 미쳤니?” 흔히 하는 말이지만 지은이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케이슨에게 이 말은 병원의 지하 터널, 굳게 잠긴 이중문, 안전망, 플리스틱 포크, 가까이 오는 것조차 싫어하는 간호사들, 벌레 보듯 하는 사람들의 눈길, 건너서는 안 되는 어떤 희미한 경계를 뜻한다.
하지만 케이슨이 정신병원에 들어간 이유를 오로지 당시의 사회 상황 때문이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열여덟 살 소녀에게 당시의 현실은 너무 난해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케이슨이 말한 대로 그날따라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해서 쉬고 싶었을 수도 있고, 의사의 알량한 - 세상을 어지럽히는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 권위 의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단 15분 만에 입원을 결정한 의사의 오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무엇 때문이었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누구나가 어떤 이유로든 그곳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967년 4월 27일 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정신과의사와 단지 몇 분 동안 면담한 뒤, 열여덟 살 소녀 수잔나 케이슨은 택시에 태워져 병원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다음 2년을 매클린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보낸다.

수잔나 - 어느 날 문득 자신의 한 부분을 지우고 싶은 생각에 아스피린 50알을 삼킨다. 그러나 곧 실수를 깨닫고 우유를 사 마신다. 엄마가 약 먹기 전에 꼭 우유를 먹으라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 부분을 지우고 싶어서 아스피린 50알을 삼켰다는 작가 케이슨,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머릿속이 깜깜해졌다는 조지나, 얼굴에 불을 지르고 끔찍한 화상을 입은 폴리,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늘 탈출을 꿈꾸는 리사, 아버지가 전직 CIA요원 이라고 주장하는 웨이드, 닭고기 뼈로 온 방안을 장식한 데이지, 자기 몸과 방안을 온통 똥으로 칠한 앨리스…… 그들은 모두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 우울증, 신경증적 정신 장애 같은 병명을 하나씩 달고 있다. 정상이라고 믿는 우리는 그들의 삶을 궁금해 한다. 왜 정신병원에 들어간 거지? 그들은 나와 어떻게 다를까? 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우리의 호기심에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바로 사람들의 이런 궁금증은 다만 자신이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들에게 아무 위안도 용기도 줄 수 없다면 묻지 말라고.
“과거에는 지겹도록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가 이제는 그랬던 나 자신에게서 이렇게 멀어졌는데, 제정신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 당신은 얼마나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며, 그런 당신의 혐오감은 얼마나 더 깊겠는가?”

작가는 “이 세상과 함께 존재하고 이 세상과 닮았지만 이 세상에 편입되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과 나란히 존재하는 또 하나의 우주……. 거기에 범죄자들의 세계, 장애인들의 세계와 함께 정신이상자들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평행우주’는 바로 우리 자신의 무관심과 편견이 만들어낸 세상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을 따듯하게 맞아줄 이 하나 없는 비열한 세상에서 도망친 그들에게 병원은 그들을 보호해주는 은신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미치게 만들었던 온갖 요구와 기대, 미래에 대한 불안, 성적, 진로 문제 등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었지만, 자유를 박탈당한 채 세상에서 격리되었다. 엄격하고 완고하지만 환자들을 같은 사람으로 대우해주었던 발레리를 제외하고, 노골적인 교도관 행세를 하고 다니던 매퀴니 부인, 무슨 일이든 약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간호조무사들, ‘탐닉’이니 뭐니 어려운 의학 용어로 분석하려고만 드는 의사들, 오로지 실습 자료가 필요했던 레지던트들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을 찾는 일은 그들 스스로의 몫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슨은 병원 지하에서 터널을 발견한다. 터널은 바로 케이슨 자신이 그리는 세상과 자기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
“터널은 언제나 따뜻하고, 깨끗하고, 노랗고, 약속으로 가득했다. 제각기 노래부르고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하는 보일러 관과 수도관이 고동쳤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어느 쪽으로든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불완전하게, 그것도 아주 가끔씩 볼 수 있을 뿐인” 삶에서 도망쳤던 케이슨은 그 뒤 정신병원에서 나와 결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옭아맨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역시 애초에는 없었던 것처럼 자신이 원했던 완전한 자유와 삶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용기가 없다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케이슨은 25년이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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