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타 상자》는 라오서가 1937년 발표한 장편 소설로, 북경(당시엔 남경이 수도였으므로, 북경은 북평이라 했다) 인력거꾼의 삶을 담았다. 1954년 Rickshaw Boy로 번역되어 서구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1920년대 군벌들이 할거하던 시절, 북방의 시골서 살 길이 막막하여 도시에서 인력거 품이라도 팔아서 제대로 살아보려는 청년 상자가 북경으로 들어온다. 사회 저변에서 오직 자신의 몸을 자본으로 삼아 인력거를 끄는 상자, 딸보, 갈비, 늙은 마씨와 그의 어린 손자, 그리고 이강 등 인력거꾼의 다양한 면면이 그려진다. 내 인력거를 장만하여 청순한 복자와 함께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상자는 인화인력거회사의 인력거꾼으로 3년 동안 피땀 흘린 대가로 겨우 인력거를 장만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군벌들의 무법천지 전쟁 통에 그만 인력거를 빼앗기고 자신도 군대에 잡혀간다. 군대에서 도망쳐 나올 때 끌고 온 낙타 세 마리를 팔아 약간의 종자돈을 만들지만, 그 때문에 낙타라는 별명을 얻는다. 낙타는 북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면서, 짐승처럼 일하는 인력거꾼의 모습을 은유한다. 무거운 짐을 싣고 묵묵히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의 인내는 상자의 미덕이기도 하다. 다시 조 선생 댁 자가용 인력거꾼으로 들어가 성실하게 돈을 모으기 시작한 상자의 저금통을 이번엔 국민당 끄나풀이 되어 설치는 밀정 손가에게 빼앗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회사에 들어가 인력거를 빌려 끌려다가 호랑이처럼 드센 사장 딸 호뉴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결국은 임신했다는 거짓말에 속아 그녀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마음에 두고 있던 복자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력거꾼 아버지 이강에 의해 군인의 첩으로 팔려갔다가 버림받는다. 천한 인력거꾼을 사위로 맞을 수 없다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 호뉴가 해산을 하다가 난산으로 죽고, 상자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끌던 인력거를 다시 판다. 다시 조 선생을 만나 거기서 인력거를 끌며 복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릴 희망에 부풀지만, 결혼을 위해 찾아간 복지는 이미 사창가에 팔려가서 목을 맨 후였다. 이제 상자는 어떤 희망도 품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되는 대로 폼을 굴려 살아갈 뿐이다.

희망에 부풀어 인력거를 끌던 성실하고 근면한 상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력거와 아내와 사랑까지 모든 걸 잃고 삶의 의지를 상실하여 결국 인력거 끌기를 포기해버렸다. 가장 천대받는 상갓집 만장 받이 노릇을 하며 비틀비틀 사라져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가슴 속이 징하게 아리다. 라오서의 붓끝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등장한 상자가 그 시대와 사회에 의해 몸도 마음도 파괴되어 가는 모습에서 거대 사회 속 개인의 운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라오서의 비극적 전망은 우리 사회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자, 개인의 운명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그러나 바로 이런 라오서의 개인주의적인 인식은 사회주의 혁명이 완수되었다고 여긴 신 중국에서 비판에 직면한다. 건실한 노동자는 응당 밝은 미래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상자나 왕이발 같은 라오서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타락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라오서는 부르주아적이고 퇴폐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낙타 상자>와 <찻집> 모두 수정 요구를 받게 된다. 이 두 작품 모두 수정된 결말의 다른 버전들이 여럿 존재하는 이유이다. 결국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혹독한 비판에 견디다 못해, 최초의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던 라오서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태평호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낙타 상자〉는 1957년 라오서 생시에 메이첸의 각색으로 북경인민예술극원이 현대극으로 공연한 이래, 경극, 오페라, 영화 등 다양한 버전이 나왔다. 북경인예 극작가인 메이첸의 각색으로 과거 봉건적 사고 아래 다소 부정적 이미지에 머물렀던 호뉴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노동자를 차별하는 아버지의 봉건적 사고에 반항하는 여주인공으로 거듭나며, 신 중국 초기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번역의 저본으로 메이첸의 현대극 대본이 아닌 중원농(鍾文農)의 경극 버전을 택하게 된 것은 절대적으로 라오서의 원작을 잘 살렸는가의 고려에 따랐다. 감숙성경극원 소속 극작가였던 중원농은 차오위의 《원야》를 비롯해 중국현대소설들을 경극으로 각색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낙타 상자》 경극본은 원작의 뜻과 분위기를 잘 살린 각색으로 주목 받았다. 우선 90년대에 각색되어 이념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고, 전통극으로의 각색은 현대극에 비해 긴 대사가 아닌 함축적인 창사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는 특성을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력거만이 진짜야’라는 자부심과 기대에서 “돈만이 진짜야’,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진짜야’리는 현실의 강박을 거쳐 마지막에 “죽음만이 진짜구나”라는 절망 속 절규까지, 상자가 체험적으로 터득한 명제들을 작품 전개의 단계로 설정하고, 거대한 사회의 격랑 속에서 끝없이 궁지로 내몰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98년 강소성경극원(江蘇省京劇院)에 의해 공연된 경극본 《낙타 상자》는 원작을 잘 살린 각색에다 현대 소재와 경극 전통연기술을 성공적으로 접목시켜 제2회 중국경극예술제에서 금상, 1999년 제6회 중국예술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라오서 탄신 100주년기념 공연, 건국 50주년기념 공연 등, 그 해에만 60회 이상의 공연이 이루어졌고, 이어 중국희곡 학회상, 국가무대예술 정품공정 후보, 문화부 대상과 연기상 등을 수상하였다. 특히 경극의 첫 장면에 상자가 보여주는 인력거 춤은 실물 인력거를 끌면서 전통경극에서 실물을 사용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던 정식연기를 잘 접합시켜 아름다운 표현적 연기로 재창조해낸 무대로, 현대 소재 경극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밝았다. 중원농의 《낙타 상자》는 이제 현대 경극의 대표 레퍼토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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