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양한생 '무궁화의 노래'

clint 2019. 9. 2. 22:10

 

 

 

중국작가가 쓴 조선 항일 3.1운동은 어떨까?

 

양한생(1902-1993)은 일제와 중국이 신경전을 벌이는 시기 중국에서 두드러진 항일운동을 한 극작가이다. 그는 본래 국민 혁명군의 정식 북벌전쟁에 가담한 군인이었고, 1928년 창조사{創造社)에 참가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당시 그는 소설작가로 출발하였고 1930년에 중국좌익작가연행을 발기 조직하는데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1932년부터 적극적으로 희극창작을 하게 되었다. 그는 문학가이기 이전에 전사였고 또 열렬한 공산 당원이었다. 1935년 말부터 중국 공산당은 항일을 민족 통일 전선정책으로 선택하게 되고, 그는 당시 공산진영의 문예계 대부인 주은래의 결정에 따라 문예계에 항일 조직대를 구성하며 항일에 관련된 작품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특별히 항일과 관련해 희극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은 그것이 투쟁을 위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궁화의 노래는 작가가 제목에 붙임(題記)’에서 밝혔듯이 그가 북벌군으로 장강(長江) 중부 전투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그의 부하이자 전우인 이씨성을 가진 조선인의 애절한 망국기가 근거가 되어 쓴 르포(reportage) 형식의 현실적 감각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그를 통해서 한국의 ‘3·1독립운동에 대한 개인사를 알게 되었고, 나아가 이 청년의 애절한 사연이 비단 한 개인의 슬픔이 아닌 조선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법한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에 이 작품을 칙안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청년을 중심으로 한 개인사를 써내지 않고 특별히 조선의 어머니에 포커스를 두고 이 극을 진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는 <무궁화의 노래>라는 작품을 3·1운동이라는 사건 속에 두었고, 그것을 이끌고 있는 민중으로서 어머니를 선정하였던 것이다. 즉 양한생에게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핵심인물은 조선의 청년이 아닌 조선의 어머니로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작가의 사건을 해석하는 능력이었고 결국 조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료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한 것이다.

 

陽翰笙

 

 

     

 

그렇다면 어떻게 어머니는 그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독립운동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첫 번째 어머니는 천도교라고 하는 비공식적 종교에서 그의 정신적 힘을 얻는다. 이것은 어머니의 사적 공간인 동시에 공식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장소이다. 두 번째는 어머니의 정보수집의 출처이다. 그것은 종교적 집회에서의 교주의 말이고 또 하나는 극중의 김남진이라는 독립투사를 통한 뉴스의 접함이다. 이 모든 말은 남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어머니는 여성으로서 늘 남성들에 의해서만 공식적 언사를 듣게 된다. 세 번째, 결국

어머니가 행동하는 영역 역시 음지에 서게 된다. 어머니는 남성인 이영수로부터 재산권을 박탈당하면서 대가 댁에서 허름한 집으로 가서 독립의지를 굳히게 된다. 이러한 세공간은 모두 어머니의 고유의 공간이 된다. 또 어머니는 작품에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아들을 지속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나온다. 두 번째 선택은 어머니 자신의 공적인 행동에 대한 직접참여이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참관자의 입장에에 직접 태극기를 휘두르고 만세를 부르고 같은 조선인이면서 경찰을 훈계하는 것을 시작으로 감옥행을 선택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이러한 공적인 곳으로의 노출에서 중요한 것은 여기서도 어머니는 비폭력이라는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어머니다운 결정을 한다는 사실이다. 악전고투하며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지사 하나하나가 모두 무궁화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무궁화의 노래는 결국 대한 독립지사의 노래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조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직접 손에 넣음으로써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