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래러미 프로젝트」가 미국이 받은 충격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읽어내고자 했다면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는 증오범죄를 겪은 공동체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뱉어내는 피곤함과 여전히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좀 더 주목한다. 모든 공동체는 잊고 싶을 정도로 힘든 사건을 겪어야만 하는 순간이 생길 때가 있다. 그리고 공동체는 그 사건을 통해, 또는 그 사건을 기꺼이 안은 채로 새로운 선택을 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야만 한다.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는 사건 자체를 넘어서서 그 사건을 짋어지고 가야 하는 공동체의 선택과 삶에 대한 기록이다. 십 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매슈 셰퍼드 사건이 동성애 증오범죄가 아니라 마약거래가 잘못되어 일어난 폭력배들의 싸움일 뿐이라는 소문을 더욱 믿고 싶어 한다. 십년의 수감생활을 겪은 범인들은 십 년의 체념과 십 년의 분노로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이 작품은 힘든 사건을 겪어낸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해서 성장하는지, 또는 어떤 길로 가서 주저앉는지 보여 주는 담담한 기록이다. 매슈 셰퍼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증오범죄방지법의 입법화를 위해 싸우고, 생활동반자보호법을 위해 힘을 모은다. 예술은 직간접적으로 그 예술이 만들어진 사회를 반영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희곡처럼, 일어난 사건과 그 사신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기록과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하는 다큐멘터리 연극, 또는 서사극과 같은 장르는, 보다 직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관객들의 사회 인식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연극을 단지 이야기 소재나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서만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할 때 기존의 연극과 다른 방식을 택한다. 그중 아마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피스카토르가 택한 다큐멘터리 연극이나 브레히트가 소외효과를 사용해 무대에 올린 서사극일 것이다. 이러한 연극들은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기 위해서 신문 기사나 현실의 이미지를 삽입하거나, 지금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을 일깨워 주려고 극중 간에 인물들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이야기와 거리를 두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전달하려는 주제가 바로 극장바깥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임을 드러내고, 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사회구성원’인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요구한다. 특히 계몽적 결말을 제시하는 대신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엉켜 있는 현실과 우리가 해야할 몫을 생각하도록 해준다.

텍토닉 시어터 프로젝트가 ‘순간작업moment work’이라고 부르는 작업 방식은 ‘사건을 그 자리에서 본 사람들의 말을 조합해 재구성’하는 브레히트의 말에서 끌어낸 연극적 장치이다. 그런 이유로 이 희곡들은 한 사람의 작가가 아니라 대표 작가, 드라마투르그, 그리고
배우들의 공동창작으로 만들어졌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재현할 실제 인물을 직접 만나서 그 경험을 수집해오면, 단원들은 그 경험을 극 구조로 구성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 그 구조를 채워 넣는 공동 글쓰기를 거쳐 희곡을 완성해 나갔다. 연극의 전통적인 단위 대신 ‘순간’으로 불리는 연극적 장면들을 병치함으로써 전통적인 플롯으로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와 목소리로 주제를 구축해 나간다. 여러 사람들의 말로 무대가 채워지면서 단선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쌓여나가는 과정을 보게 된다. 특히 이 희곡은 배우가 아니라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눈으로만 ‘읽는’ 희곡이
아니다. 육십 명이 넘는 사람들의 주저하는 목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튀어나오는 분노와 공포가 그들의 말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쉼표와 반복되는 연결사 그리고 말과 말사이의 짧은 주저함과 멈춤을 의미하는 포즈 속에서 들리도록 하면서 「래러미 프로젝트」와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는 우리를 생각하도록 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만 하는지를.
2009년 10월 12일 텍토닉 시어터 프로젝트는 미국 오십 개 주와 다른 여덟 나라의 백오십 개 극장에서 「래러미 프로젝트; 십 년 후」를 동시 초연했다, 각각의 극장은 자신들이 정한 배우로 상연했고, 관객은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링컨 센터 앨리스툴리 홀의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과 연결될 수 있었다. ‘연합연극 프로젝트’라는 방식의 역사적 연극 교차점을 통해, 하룻밤에 오만 명의 사람들이 연극을 관람했다.

작가노트
「래라미 프로젝트」는 2000년 콜로라도 덴버의 덴버 센터 시어터 컴퍼니에서 전 세계 초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때는 우리 중 누구도 거기서 파생될 다른 공연들과 모두를 휩쓸어버릴 만큼의 큰 관심은 상상조차하지 못했다. 「래라미 프로젝트」는 십 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연극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작가로서 우리는 종종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왜 그럴까?’ 「래라미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매슈 셰퍼드가 남긴 가치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이 그 대답 중 하나였다. 그의 삶과 죽음이 래라미를 넘어 많은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가져온 것이다.
두 번째 답은 「래라미 프로젝트」 공연을 직접 올린 이들한테서 나왔다. 이 공연은 전문 극단, 아마추어 극단 지역 사회의 주민 극단, 그리고 대학과 고등학교 공연 등 다양한 극단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공연을 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곤 하는데, 이 작품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정말 놀랍다. 증오 범죄와 동성애 혐오는 종종 지역사회의 심각한 분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학생, 교사, 그리고 행정직원이 이 공연을 위해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래라미 프로젝트」는 미국의 평범한 마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일어났던 어떤 일과도 다르게 그 일에 대해 같이 이야기했던 평범한 미국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직면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매슈 셰퍼드 살해사건은 인간 본성과 경험의 가장 좋은 점과 가장 나쁜 점을 모두 드러낸 역사의 한순간이었다. 매슈 셰퍼드에 대한 잔인한 증오범죄 이후, 우리는 연극 단체로서 일 년 반 동안 와이오밍 주 래라미 주민들과 긴 시간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큰 특권을 여러 번 가졌다. 그 인터뷰들이 「래라미 프로젝트」 쓰기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래라미 주민 조너스 슬로너커는 「래라미 프로젝트」의 마지막에 묻는다. “무슨 일이 생겼는데요? 이것들을 단단하게 지속시킬 어떤 게 나온 건가요?" 십 년 후 우리는 그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기 위해 와이오밍 주의 래라미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들의 마을이 어떻게 변했는지 다시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원래 인터뷰의 많은 부분을 되짚어 보았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는 매슈의 어머니 주디 셰퍼드 뿐만 아니라, 가해자 에런 매키니와 러셀 헨더슨도 포함되어 있다.
매슈 셰퍼드 살해사건 10주기가 다가오면서, 텍토닉 시어터 프로젝트의 예술감독 모이세스 코프먼은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지역 사회는 스스로의 역사를 어떻게 써 나가는가? 이토록 잔인한 범죄와 연관되었던 10년을 현미경 아래에 놓고, 래라미는 어떻게 응답해
왔는가. 온 나라, 온 세계 사람들은 래라미가 자신들의 마을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국가로서 그리고 세계 공동체로서 어떻게 응답해 왔는가.
「래라미 프로젝트: 십 년 후」는 독립된 하나의 연극으로 씌어졌다. 이 연극이 원래의 「래라미 프로젝트」와 꼭 연결시켜서 공연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래라미 프로젝트」를 공연했던 전국의 마을과 도시, 그리고 학교, 또한 자신들의 지역사회 안에서 이 후 일담 역시 무대에 올려 주길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연극이 래라미 여정의 전체 폭과 범위를 제공하는 레퍼토리로 공연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가슴이 뛴다.
「래라미 프로젝트: 십 년 후」 세계 초연은 매슈 셰퍼드 사망 11주기에 이루어졌다. 링컨 센터의 앨리스 툴리 홀에서 「래라미 프로젝트」 초연 당시의 캐스트로 공연되었다. 동시에 미국과 전 세계 백오십 개 이상의 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우리는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될 수 있어 영광이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와 이 대화를 나누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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