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애너 지글러 ' 51번 사진'

clint 2019. 8. 8. 19:47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는 킹즈 칼리지 스트랜드 캠퍼스 건물의 외벽에는 킹즈 칼리지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인물들의 사진과 업적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는 명에의 벽이 있다.. 51번 사진의 두 주인공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도 이 벽에 나란히 올라 있다. 윌킨스 이름아래에는 “DNA연구 선구자(DNA pioneer)"라는 표제 아래 런던 킹즈칼리지 랜들 연구소의 알렉 스토크스, 허버트 윌슨과 함께 1950년대 초반 DNA 구조발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적혀 있다. 바로 옆 프랭클린의 이름아래 표제어는 “51번 사진을 촬영함"이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진 중의 하나인 이 사진이 “DNA 나선형 구조를 입증하고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1953년 최초의 DNA분자 모델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프랭클린은 그 촬영자에 불과하다는 뜻일까? 51번사진이 왓슨과 크릭의 모델을가능하게 해주었다라는 말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사실일까? 51번 사진은 그에 관한 드라마이다.

 

 

 

 

 

작가 애너 지글러가 작가노트에서 강조하듯이 51번 사진실화에 기초를 두고 있긴 하지만 허구의 작품이다. 그렇다고 결코 실화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극에 등장하는 주요 에피소드의 세부사항은 물론 심지어는 몇몇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 극은 브렌다 매독스가 쓴 프랭클린 전기에 크게 빚지고 있기에, 매독스의 전기에 대해 먼저 몇 가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2004)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이 책의 원제는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의 다크 레이디이다. “다크 레이디는 윌킨스가 왓슨과 크릭에게 프랭클린을 지칭하던 별명으로, 프랭클린이 킹즈칼리지를 떠나기 며칠 전에도 그는 크릭에게 우리의 다크 레이디가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며 한껏 들뜬 편지를 보낸 바 있다. 윌킨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도 제압할 수도 없는 강팍한 여자인 프랭클린에 대한 반감을 그녀의 유태인 외모에 실어 표현한 것이다. 극중에도 등장하는 프랭클린의 또 다른 별명은 로지였다. 특히 왓슨은 그의 유명한 회고록 이중나선에서 그녀를 로지라고 비하하여 지칭하며 능력을 폄훼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중나선에서 학회 발표 중인 프랭클린의 발표내용은 무시하고 외모나 이리저리 품평하던 기억을 호기롭게 술회한 대목은 51번 사진에서도 그대로 극화되어 있다. 매독스의 프랭클린 전기는 여러모로 왓슨이 이중나선에서 일방적으로 비하하고 평가절하하고 왜곡한 프랭클린에 대한 변호이다. 그러나 이 전기에서 매독스는 무작정 프랭클린 편에 서서 윌킨스, 왓슨 등을 비난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녀를 비운의 여성 과학자신화로 감싸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용가능한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관련 인물들이 처해있던 상황과 인물들 간 갈등의 원인을 재구성하고 최대한 균형 잡힌 해석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에필로그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매독스의 에필로그는 왓슨의 행보와 이중나선을 차근차근 분석한 후, 프랭클린에 대한 평가절하 못지 않게 신화화에 대해서도 분명히 선을 긋는다. 예를 들어, 프랭클린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이유와 만약 생존해 있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에 대해서도 매우 현실적인 결론을 내린다. 심지어 프랭클린이 난소암에 걸려 요절한 이유가 엑스선 노출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연구에 헌신했기 때문이란 해석에 대해서도, 유태인의 여성암 발병률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까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객관성과 균형감을 견지하려는 매독스의 입장은 이중나선에서 왓슨의 자기 과시적 서술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프랭클린에 관한 한 매독스의 전기와 이중나선중 어느 쪽이 실화를 말하고자 하는 지는 두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51번 사진의 지글러 역시 매독스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왓슨에 대해서는 희화화에 가까운 묘사를 선택한 반면, 극의 주인공인 프랭클린과 윌킨스에 대해서는 관객의 공감이 한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쏠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대사를 썼고 초판의 작가 노트에서는 두 역을 맡은 배우에게 당부의 말까지 따로 남긴다.

 

 

 

 

19511월부터 약 2년간 프랭클린과 윌킨스사이에 벌어졌던 실화에 충실할 때에야 비로소, 지금이라도, 문제의 핵심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51번 사진이 프랭클린과 윌킨스의 실화를 극화하는데 사용하는 허구의 틀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이다. 극 초반에 두 사람이 주말사이 우연히 한 극장에서 만날 뻔했던 사실을 알게 되고 프랭클린이 본 연극 겨울 이야기를 화제 삼아 둘은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눈다. 실제로도 프랭클린은 연극과 책을 좋아했고 킹즈칼리지가 서있는 스트랜드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런던의 극장가인 웨스트엔드이므로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깊은 회한을 드러내는 극의 마지막 장면에 다시 등장하여 극의 주제를 또렷이 각인시키는 것도 겨울 이야기이다. 겨울 이야기는 시칠리아의 왕 리언티즈와 왕비 허마이어니의 이야기이다. 느닷없이 왕비 허마이어니의 부정을 의심하게 된 리언티즈가 임신 중인 그녀를 감옥에 가두고, 뒤이어 감옥에서 태어난 딸을 신하 안티고너스에게 내다버리도록 시킨다. 그러던 중 상심한 리언티즈의 아들이 병들어 죽고, 충격을 받은 허마이어니까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가족을 모두 잃고 회한으로 16년의 세월을 보낸 리언티즈는 내다버려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 퍼디타와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되고, 왕비의 옛 친구가 보여준 허마이어니의 조각상이 그들이 보는 앞에서 허마이어니로 되살아나 그녀에게도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이룬다. 허마이어니가 리언티즈에게는 죽었다고 알리고 16년 동안 숨어살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허마이어니의 생환이 리언티즈에게 구원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겨울이야기의 환상적 결말은, 현실에서는 남은 인생을 후회하며살았다고 고백하는 윌킨스가 매달리고 싶은 덧없는 희망이다. 허마이어니가 살아 돌아오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고, “분명살아온다고 우기는 윌킨스에게 극중 프랭클린은 조각상이 살아나는 것은 리언티즈의 희망이 투사된 것뿐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19511월 유난히 추웠던 런던의 겨울을 소환하며 51번 사진은 프랭클린과 윌킨스의 겨울 이야기다시 시작한다. 첫 장면에서 왓슨은 또 시작이냐고 질색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현실의 왓슨은 51번 사진의 도용 논란이 제기된 이래로 해명과 변명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그가 원래 정직한 짐(Honest Jim)이라는 제목으로 썼다가 이중나선으로 바꾼 회고록의 출판도 그 중하나였지만 이 책은 논란을 더 키웠고 해명은 끝나지 않았다. 이중나선을 출판하기로 돼있던 하버드 대학출판부에 프랭클린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문제 삼아 결국 하버드에서의 출판은 백지화시켰던 윌킨스와 크릭이, 극중에서도 왓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그 후로도 윌킨스는 여러 번 다시 시작하고자 시도한다. 예를 들어, 첫 만남 이후 프랭클린과의 관계가 순탄치 않자 윌킨스가 소개부터 다시 하지고 제안하여, 둘은 실제로 자기소개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을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라고 소개하는 프랭클린을 윌킨스가 처음과 마찬가지로 프랭클린 이라고 부르는 솥간, 프랭클린은 시간낭비라며 돌아선다. 돌아서면서도 프랭클린은 소개부터 다시 하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 다시 하라고 말한다. 윌킨스가 이번엔 초콜릿 상자를 들고 나타나 또 다시 시작하자고 청하다가 면박을 당하는 장면에서, 그가 프랭클린 박사라는 호명의 의미를 인지/인정하리라는 기대는 최종적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윌킨스가 처음부터또 다시 시작하자고 할 때는 이미 너무 늦어져버렸다. 윌킨스가 간절하게 상상하듯, 만약 그날 두 사람이 함께 연극을 보고 얘기를 나눴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프랭클린의 첫 출근 날 윌킨스가 남성 전용 교수식당으로 혼자 가지 않고 프랭클린과 다른 식당으로 함께 갔다면 어땠을까? 만약 처음부터가 아니라면 뒤늦게라도 윌킨스가 프랭클린 박사라고 불렀다면 어땠을까? 이 외에도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만약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질문들로 이어진다. 윌킨스를 제외한 등장인물 모두가 저마다의 입장에서 프랭클린에 관해 만약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던진다. 왓슨은 프랭클린이 더 나은 과학자였더라면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이어서 돈 캐스퍼는 조금 더 무모하고, 모델을 만들고, 확실한 증거 없이도 밀고 나갔더라면이라고 반문한다. “더 나은 과학자가 과연 무엇이냐는 듯이. 프랭클린이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그들과는 달리 윌킨스의 만약은 다시 겨울이야기같이볼 수도 있었던 그날로 돌아가고자 한다.

 

 

 

 

51번 사진에서 윌킨스가 계속 해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순간은 왓슨 말처럼 노벨상을 탔던 인생 최고의 순간도 아니고, 문제의 사진을 왓슨에게 생각 없이 보여줬던 순간도 아니다. (매독스에 따르면, 카벤디쉬 연구소가 왓슨과 크릭에게 연구 중단을 지시한 뒤였으므로 윌킨스는 그들이 DNA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왓슨이 사적으로도 말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왓슨이 말하는 윌킨스일생 최대의 실수,” 즉 나폴리 학회에서 처음 만난 왓슨이 DNA 연구팀에 끼고 싶다고 한 부탁을 거절한 순간도 아니다. 이에 대해서 윌킨스는, 사람들도 그가 나폴리에서의 선택을 최대의 실수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만약 거절하지 않았다면 생명의 비밀발견자가 왓슨과 크릭 듀오가 아니라 우리두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최소한 극중에서는 그를 끝없이 재소환 하는 기억은 그날이 아니다. 이 극에서 윌킨스의 최대의 실수는 왓슨을 킹즈칼리지에 영입하지 않은 것도, 프랭클린에게 알리지 않고 51번 사진을 왓슨에게 보여준 것도 아니다. 사이가 서먹했던 새 동료를 우연히 극장에서 보았을 때, 돌아서지 않고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고 같이연극을 보았더라면, 첫날의 실수와 그 후로 이어진 오해를 바로잡고 서로 존중하는 동료관계로 다시 출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문맥상 윌킨스가 말하는 우리는 왓슨과 자기 자신이지만, 생명의 비밀 발견자가 달라졌다면 그것은 왓슨과 윌킨스가 아니라 프랭클린과 윌킨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아버린 그 순간이 극의 마지막까지 윌킨스를 붙잡는다.

극중에서 윌킨스는 프랭클린이 암에 걸린 것을 알고 난 후 편지를 쓴다. “프랭클린 양에게. 아니. 로절린드에게. 아니. 프랭클린 박사에게" 그는 이때 처음으로 프랭클린을 박사라고 부른다. 호명은 이 극에서 동료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핵심 장치이다. 프랭클린의 직접, 간접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윌킨스는 굳이 프랭클린 양이라는 호칭을 고집할뿐더러, 심지어는 고즐링까지도 종종 지도교수를 프랭클린 양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프랭클린은 돈 캐스퍼가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캐스퍼씨에서 캐스퍼박사로 바꿔 부르며 대등한 동료로 받아들인다. 윌킨스가 박사라고 부르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했기 때문에 정당한 호명이 두 사람 관계의 걸림돌이 되지만 실은 프랭클린이 박사라는 호칭 자체에 집착한 것이 아니다. 크릭의 집에 모두가 초대받아갔을 때 캐스퍼가 프랭클린을 로지라고 부르자 윌킨스는 깜짝 놀라지만 정작 프랭클린은 괜찮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동료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믿음이고, 윌킨스, 왓슨, 크릭은 프랭클린에게 그것을 주지 못했고 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름의 중요성에 관한 극적 아이러니 의 순간은 뜻밖에도 윌킨스의 대사에 들어있다. 프랭클린과 겨울이야기중 안티고너스의 꿈 장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는 잃어버린 아이라는 뜻의 퍼디타라는 이름이 그 아이를 살리는것이라 말한다. 윌킨스 자신은 모르고 있고 그래서 극적 아이러니이자 복선이지만, “프랭클린 박사란 이름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다. 프랭클린에게도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1953223일 밤, 늦게까지 남아 51번 사진을 들여다보던 프랭클린이 드디어 A형과 BDNA 모두 나선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때 윌킨스가 들어와 둘이 같이 얘기하면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하고, 무대 위는 한순간 정지화면이 된 듯 멈춘다. 고즐링의 방백대로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었을 여러 가능성들이 무대 위를 감돈다. 잠시 후 프랭클린이 일어나 그만 가보겠다고 나오면서 여러 가능성들 중 오직 한 가능성만 남게된다. 프랭클린의 동의 없이 윌킨스를 통해 51번 사진을 보고 확신을 얻은 왓슨과 크릭이 DNA 모델을 완성해서 1953425네이처지에 역사적 논문을 발표하고 생명의 비밀 발견자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되는 가능성만이 남는 것이다. 왓슨과 크릭보다 먼저 DNA 구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프랭클린의 가장 큰 회한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사물의 형태를 좋아하던 그녀가 그것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그러지 못했고, 그 책임은 윌킨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길이라고 윌킨스가 말한다. 물론 과학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극 51번 사진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던 두과학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을 수 있었던 많은 기회와 가능성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프랭클린은 킹즈 칼리지에 오기 전 프랑스 국립 화학 중앙연구소에서도, 킹즈 칼리지에서 옮겨간 버크벡 칼리지에서도 동료들과 유쾌하게 어울리며 뛰어난 연구성과를 냈다. 윌킨스도 고즐링 말마따나 다소 딱딱한 성격이긴 해도 말수 적고 예의바른 보통의 영국인 학자였고 크릭 같은 동료와는 허물없이 지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제대호 된 동료관계를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프랭클린이 여성이었고 윌킨스는 그 여성동료를 어떻게 존중하며 받아들일지 알지 못했던 탓이 가장 크다. “친절이 아니라 존중으로 대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윌킨스는 너무 늦게야 깨닫는다.

다시 프랭클린과 윌킨스가 각자의 외로움에 갇혀 연구하던 킹즈 칼리지로 돌아가 보자. 명예의 벽에서 이어지는 건물의 유리창에 윌킨스가 남긴 말이 크게 새겨져 있다.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의 이야기는 과학 연구에서 마음을 연 태도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윌킨스가 언제 어떤 자리에서 이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으므로 프랭클린을 비난하는 말이었는지 뒤늦게 자신을 책망하는 말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맥락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더없이 맞는 말인 동시에, 두 사람의 불행했던 관계를 생각하면 아이러니컬 하기도 하다. 어쨌든 1962년 노벨상수상 연설에서 윌킨스는 고인이 된 프랭클린의 결정적 공헌을 언급했고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그리고 왓슨은 그렇게 받은 노벨상 메달을 2014년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팔았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논하지 않겠다.)

 

 

 

   

애나 지글러(Anna Ziegler)

 

미국 뉴욕 출신의 극작가. 예일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극작 전공으로 예술석사(MFA) 학위를 받았다. 2007년 연극 생명과학으로 데뷔한 후 200851번 사진으로 제3회 스테이지 국제 희곡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뉴욕 초연 이후 미국 주요 도시에서 상연된 51번 사진2015년 런던의 노엘 카워드 극장 공연으로 2016년 왓츠온 스테이지(What’s on Stage) 신작상을 받았다. 최근 오베론 출판사에서 51번 사진을 포함하여 지글러의 대표 희곡 4편을 수록한 희곡집, 하나(Plays one)를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