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코미디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1980년대와 2016년을 배경으로 '용감한 시민상' 때문에 엉뚱하게 꼬이고 얽힌 두 남자 그리고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시대가 인간에게 던지는 모든 질문은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질문은 그 자체가 딜레마이며, 최후엔 용기의 문제가 된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딜레마 속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최대의 용기' 뒤에도 요구되는 '최후의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다.
때는 1980년. 소시민 김두관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 위해서 이오구는 억울하게 강도 누명을 쓰게 된다. 자연스럽게 휘둘러지는 폭력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애국가, 자연 헌법을 줄줄 외워야만 하는 김두관이 받는 상이 '용감한 시민상'이란다. 아이러니하다. 이오구는 출소 후 자신이 '쪼다'가 아님을 증명받기 위해서 얼떨결에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김두관을 찾아가고, 칼로 그의 배를 찌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기껏 용기를 낸 것인데, 그 대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다. 이 역시도 아이러니하다.

개인이 모여 국가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국가에는 어쩔 수 없이 통치자가 등장하고, 국가 권력이라는 게 만들어진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국가의 권력에 맞서 보여줄 수 있는 개인의 '용기'에 대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어떠한 국가 권력에 의해 개인이 억압받을 때 그 개인은 용기를 내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개인은 약자이기 때문에 집단으로 뭉쳐 싸워야만 했다.
이 연극의 배경이 되는 1980년 대한민국 사회상을 생각해보면 국가 권력이 한참 잘못된 방식으로 작동하던 때가 아니었던가. 소시민 김두관과 이오구 두 명은 1980년대 국가 정권에 의해 이용당한 개인을 대변한다. 이 연극은 국가를 향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철저히 이용당하다 끝내는 제대로 된 윤리적인 판단마저 상실하게 되었던, 그 당시 대한민국의 모습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극 말미의 배경에 해당하는 2016년으로 돌아와서야 김두관과 이오구는 촛불을 든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을 보며 깨닫는다. 맞서 저항하고 용기를 내 싸워야할 대상은 바로 국가권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국가권력이 만든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쓰면 쓸수록 수렁에 빠졌던 두 사람이 30여 년이 훌쩍 지나서야 진정한 '용기'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슬펐다. 최치언 작가의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잘 살아있는 연극이다. 김두관을 쫓아다니며 한번만 칼로 찌르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상황, 이오구를 피해 김두관이 찾아가 절에서의 불상 그리고 요가하던 스님과 시골의 약국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설명을 늘어놓던 약사까지. 아이러니한 상황과 곳곳에 자리 잡은 웃음 포인트는 관객들을 웃음 짓게 한다.
그러나 1980년대 군사정권, 간첩, 귀순용사, 북한, 그리고 현재의 촛불집회와 같은 소재는 소모감이 크다. 관객 입장에서는 하나의 연극 안에서 이 모든 소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매우 피곤한 일이고, 사실 매일 매일이 다이내믹하고 극보다 더욱 극적으로 바뀌는 한국 사회에서 '촛불집회'라는 것도 조금은 철이 지난 소재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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