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이>는 ‘88만원 세대’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이다. 흔히 청춘 하면 눈부신 열정이나 경쾌한 감각을 떠올리지만, <우리 사이>를 만든 젊은 연극인들은 그 통념에 빠져들지 않는다. 대신 고시원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전망 없는 삶을 허비하는 희극적이고 시시한 청춘을 정직하게 잡아냈다. 작품은 개키다 만 옷처럼 아무렇게나 부려진 고시원을 무대 중심에 놓고, 그 공간을 감싼 사각의 세상을 오고 가면서 여덟 개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벽도 없이 사각 테두리에 갇힌 고시원 원룸은 섬처럼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는 말처럼 <우리 사이>는 고시원이라는 섬과 세상의 간극, 알다가도 모르겠고 다가가고 싶어도 좁혀지지 않는 여러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방황은 공간적으로는 고시원으로 수렴되는 구심력이 작동하지만, 시간적으로는 확산적인 원심력의 구조다. 작가는 아무 연결점 없이 그저 고시원 원룸을 매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종되는 삼십대 백수와 역시 그 대열에 끼어드는 이십대 백수로 작품을 열고 닫는다. 연출 역시 사람은 바뀌었지만 상황은 같은 식으로 앞뒤 장면을 흡사하게 연출했다. 덕분에 작품 속 방황은 어느 한 젊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시원을 거쳐 가는 모든 젊음으로 확산되며 두께를 확보한다. 그러나 일상성에 골몰하여 밀도를 떨어뜨리는 대사의 과잉이나 사실적 스타일과 연극적 스타일을 임의로 넘나드는 편의적 연출 방식은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젊은 ‘폐인’들을 둘러싼, 관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포착되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감정의 유통방식이 보다 직접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헐렁 한 추리닝 패션으로 대별되는 이들의 비루한 일상은, 이 작품을 단순히 일상의 풍경에 충 실하다는 범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이 극이 지닌 미덕이 에피소드식 구성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단면에 집중한 여타의 창작극들과 같은 맥락에 놓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일상의 미묘한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섬세함에 놓여있다는 점을 주목할 때 이 작품의 변별점은 드러나게 된다. 즉 작품의 미덕은 고시생들의 구질구질한 일상을 펼쳐 보이면서도,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삶의 순간들; 가령 옛 애인을 만난 아내가 전화를 걸어온 남편에게 바쁘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 것이나 낯선 이가 건네주는 담배 한모금의 위안 등 과 같은 일상의 진실한 찰나까지 아우르는 감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공연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러한 감각을 효율적으로 형 상화해서 관객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유심히 작품을 관극하고 있노라면, 공연의 흐름이 주제와 에피소드 구성이 주는 서사의 리듬과 적절하게 맞 물려 진행된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정교한 심리적 리듬의 구축보다는 관객의 재미만을 위 해 몰고가는 듯 한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등장인물들이 시련을 겪고, 고시에 불합격하고 그에 대한 울분 해소책으로 술에 취해 깽판을 치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이들 대목에서 배우들의 물리적 에너지가 유독 집중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들 대목에서 관객의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된다. 간간히 목도되는, 인물간의 내 지르기식 감정 분출을 통해 체감되는 과잉의 정서는 공연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 인인 것이다. 무대 전환시에 삽입된 인물들의 악기 연주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하모니카에 서 첼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악기의 선율이 장면과 장면 사이를 이어주고 있지만, 이것은 여운과 여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극의 흐름을 산만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 관객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과잉이나 산만함이 걷혀진 대목이다. 비좁은 고시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 티격대는 두 고시생의 모습은 ― 술 에 취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이들의 장면보다 ― 구체적인 삶의 리얼리티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훨씬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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