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에 걸터앉아 욕을 한 바가지 퍼붓는 노인은 힘이 없다. 명배우 자신을 왜 알아차리지 못하냐며 분노에 떨지만 노인의 행색 그 어디에도 배우다운 포스는 없다. 주름진 눈가와 목 사이로 세월의 덧없음과 쓸쓸함이 자리할 뿐이다. 아침나절인데도 무대는 컴컴하다. 무대만 보면 해가 저문 저녁과도 같다. 노인 주위에는 밝은 조명이 들지 않는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무뚝뚝하고 축 처져 있다. 파란색과 붉은 조명은 노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웃어도 서글퍼 보이는 것은 늙는 것에 대한 한스러움과 외로움 그리고 조명이 더해진 탓이다.
명배우 황금봉은 일인극 형식을 취한다.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생각한다.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황금봉의 생각 속에서다. 늙어 손아귀에 힘이 빠진 그는 오렌지 쥬스 뚜껑조차 열지 못하지만 꿈에 대한 기상만은 청춘 못지않다. 뚜껑을 열지 못한 황금봉은 슬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이 들었음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피곤해서 뚜껑을 열지 못하는 거라고 에둘러 위로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관객은 안다. 황금봉의 축 처진 어깨 끝자락에 늙고 외로워 서글픈 그의 마음이 뚝뚝 묻어나므로.

황금봉은 나이 듦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그의 꿈과 이상에 대해 노래한다. 그는 명배우고 지금은 영화출연을 하지 않지만 그 기개만은 고매하다. 그는 스스로 배우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연히 들른 두부장수가 어렵사리 자신을 알아보자 비로소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욕심은 없다. 황금봉은 그저 배우로서 자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냉혹한 현실은 그가 배우였다는 것을 혹은 배우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지나간 대본과 몇몇 포스터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네모난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황금봉의 대본은 그가 배우였던 시절의 빛을 한껏 머금고 쥐죽은 듯 잠자고 있다. 이제 소리쳐 깨워도 더는 반응하지 않는다. 황금봉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겠다던 어느 영화사의 사장처럼 손을 뻗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관객은 좀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현실인지 아니면 황금봉의 머릿속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의 생각은 곧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은 물거품이 된다. 영화출연 제의로 한껏 들떠 있지만 정작 황금봉은 자신이 정말 전화를 받은 건지, 꿈을 꾼 건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게 허공에 발을 묶인 채 불안하게 떠다니던 황금봉은 세월의 무게를 달고 서서히 땅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그는 고매한 배우정신을 슬며시 내려놓고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빛나는 별이든 그렇지 않든 별은 다 외로운 법이므로 황금봉은 외로움 대신 안온함을 택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혜로워지고 여유로워짐을 뜻한다. 신체나이와 달리 늘 청춘의 기개를 자랑하던 황금봉도 자신의 나이와 타협한다.

황금봉은 늘 자신의 곁을 맴돌며 그를 위로하고 채근하던 딸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황금봉의 딸은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인물이다. 어두컴컴한 조명만이 자리한 무대도 딸의 등장에는 밝은 빛이 잠깐 어린다. 딸과 마주하는 시간만큼은 황금봉의 표정도 밝다. 지금은 영화출연조차 하지 못하는 황금봉이지만 딸 앞에서 그는 늘 멋진 배우다. 딸은 그의 배우정신을 높이 사며 늘 그를 추어 올린다. 딸을 통해 그의 속내가 드러난다. 딸은 아버지의 정신을 일깨우는 동시에 아버지의 자아를 무대 위로 끌어 올린다. 그의 딸이 황금봉을 인정하는 존재였다면 황금봉의 의사친구는 그의 나약함을 들춰낸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배우였지만 지금은 늙고 노쇠한 노인이 됐음을 아프게 각인시킨다. 황금봉과 달리 그는 현실에 발을 두고 있다. 그의 눈에는 그런 친구가 마땅찮다. 관객은 의사친구의 등장으로 황금봉이 지금 현실과 이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꿈결을 헤매는 그에게는 현실도 이상도 없다. 혼돈만이 가득하다.
혼돈만이 들어찬 극장이지만 관객은 소망한다. 그 혼돈이 끝나지 않기를, 그가 꿈의 끈을 놓지 않기를. 황금봉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 명배우라는 타이틀이 존재하길 바란다. 어느 노인의 꿈과 삶 그리고 쓸쓸함을 진솔하게 그려낸 연극 ‘명배우 황금봉’은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때로는 입가에 함박웃음을 짓게 하는 따뜻함을 안겨준다.

작가의 글
이 작품은 한 때 영화배우로 명성을 날리던 한 노배우의 가슴 시린 자기고백이자 회한이며, 한 인생을 두 시간으로 축소한 절절한 모노드라마에,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장엄한 비극이면서, 스멀스멀 웃음이 배어나오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명배우 황금봉〉은 개인적으로 유난히 내 손에서 오랜 기간 수정을 거치며 숙성된 희곡이다. 5년 동안 내 안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5년 내내 이 작품에 매달렸다는 건 아니다. 쓰고 묵혔다가 어느 날 꺼내 또 수정하고 다시 넣었다 꺼내보곤 수정하고 .... 그 사이에 많은 작품이 쓰여 지고 공연되면서도 어쩐지 이 작품은 나의 일부처럼 소중하게 느껴지고 세월의 정이 들어 더더욱 귀히 여겨지는 것이었다. 본래 매우 친분이 두터운 한국 연극의 내로라하는 유명배우와 공연하기로 하고 쓴 작품이었으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틈만 보다가 생긴 일이기도 하다. 그 후론 왠지 그 배우가 아니면 극이 제대로 표현될 것 같지 않아 여러 차례 주위의 요청에도 공개하지 않고 그 배우와 여러모로 함(合)이 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돌아보면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절절하게 했던 이 작품의 핵심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결국 합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아쉬움을 털어내고 5년 만에 뜻이 통하는 사람들을 모아 진득하게 무대에 올린 기억이 있다 극의 모티프를 제공했던 배우였던지라 같이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컸으나 한편으론 뛰어난 배우술보다는 온전한 희곡으로 승부를 하는 게 옳다는 판단도 한 듯하다. 이 작품의 형식은 모노드라마에 가깝지만 실상은 여러 명이 나오는 연극이다. 하지만 그 인물들은 모두 한 노인의 기억이나 환상에 머무는 인물들이다. 기억이나 환상이 주인공이 될 수 없듯이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은 한번 무대에 오르면 연극이 끝나야 내려갈 수가 있을 만큼 에너지가 충만 돼있어야 하며 진폭이 큰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절제력에다 무엇보다 대사 양이 많아 집중력을 높이고 남다른 각오를 해야 능숙히 표현해낼 수 있는 극이다. 이 말은 만만하게 해낼 수 있는 역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배우로서 오히려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며 이미 타 극단에서 올린 이 공연의 평을 통해 그 점은 여실히 입증되기도 했다. 늦가을 서정이 가득 배어있는 이 작품에서 난 아직도 낙엽의 냄새를 느끼고 있으며 탈고를 마친 날 왠지 모를 서러움에 가슴이 뭉클하게 시려왔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정체 모를 그리움이 모든 이들에게도 오롯이 스며드는 작품이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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