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태수 '트라우마 인 인조'

clint 2019. 1. 28. 10:59

 

 

 

 

인조반정으로 광해를 몰아낸 조선의 열여섯 번째 임금 인조는 스스로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못 느끼며 마음속의 종양인 미묘한 트라우마를 갖는다.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며 병자호란을 자초했다는 약한 지도자의 상징 인조의 내면에 반란을 두려워하는 경계심이 나타나며 스토리는 전개된다. 아들 소현 세자와 며느리 강빈이 반정을 꿈꾸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며, 아들내외와 손자들, 그리고 며느리 일족에 대한 조선조 최대의 대참살 극을 벌인다. 광기 어린 인조와 만만치 않은 며느리 강빈과의 대화 속에 극중극 형태로 과거의 일을 손에 땀을 쥐도록 그려낸다.

 

 

 

 

광해 이후 다시 반복되는 잔혹사! 연극 트라우마 in 인조(仁祖)- 광해! 그 이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이 된 인조. 다시 반복되는 잔혹사! -왕위에 올랐으나 수치와 치욕을 겪고 트라우마로 아들과 며느리를 죽인 인조이야기! - 유려한 문체의 이 시대 최고의 작가 김태수가 쓴 이 작품은 조선 제 16대 왕인 인조의 트라우마에서 시작한다. 친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그 일족을 멸족시켰던 무자비한 임금. 병자호란을 몰고 와 나라를 위기로 몰아간 무능한 임금으로 평가받는 인조.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반란으로 왕이 됐으나 결국 반란을 두려워하게 된 깊은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인조는 자신으로 인해 세상을 등진 죽은 며느리 강빈을 만난다. 둘의 대화 속에 극중극 형식으로 지나온 세월들이 박진감 넘치고 밀도 있게 그려지며 인조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풀어낸다.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꽃마차는 달려간다등으로 유명한 극작가 김태수가 유려한 문체를 담아냈고 전통의 다양한 요소를 세련되게 표현해내며 역사적 교훈과 가치를 잘 담아낸 정통사극이다.

 

 

 

1623년, 선조(宣祖)의 손자인 능양군은 광해군의 폐모살제와 명(明)과 후금 사이의 중립외교를 이유로 김류, 이괄 등을 앞세워 창덕궁으로 진군하고, 반정에 성공하여 왕좌에 오른다. 그러나 정사공신이었던 이괄이 자신에 대한 처우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되고, 역모의 누명을 쓰자 난을 일으켜(1624년) 파천의 위기를 맞는다. 반정의 주축세력인 서인(西人)은 정권의 중심이 되어 친명정책을 이어가지만 명의 약화와 더불어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후금은 조선의 어지러움을 틈타 두 차례에 걸쳐 침략하게 되고 병자호란(1636년)의 결과로 인조는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린다. 또한 청국에 10만에 달하는 백성과 소현세자, 세자빈 강씨, 봉림대군이 볼모로 보내진다. 세자빈 강씨는 심양관에 머물며 함께 온 궁녀와 신하들 약 200여명의 배곯이와 노예생활을 하는 조선인들의 고통을 보게 되고, 청 왕족의 요청으로 종이, 공예품 등 품질이 우수한 조선의 물품으로 무역을 전개한다. 또한 무역으로 번 돈으로 조선인 포로들을 속환하여 척박한 만주 일대에 땅을 일구고 많은 수확물을 거두어 귀족들에게 비싼 값으로 되파는 등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명의 멸망으로 북경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천주교와 서양과학을 접한다. 그러나 인조는 유학 이론과는 대조되는 실사구시에 따른 무역을 못마땅해 하고, 삼전도의 치욕을 안긴 청의 신임을 얻어 유연한 외교와 포로구출사업을 펼치는 소현세자 내외에게 권위침해의 위기를 느낀다. 여전히 성리학 중심의 사회였던 조선에서는 후궁 조씨 등의 세력에 의해 강씨가 청나라와 합심하여 소현세자를 왕으로 올리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돌게 되고, 9년여 간의 인질생활을 마감하고 환국한 소현세자는 두 달 만에 의문사 한다. 세자빈 강씨는 인조를 독살하려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듬해 사약을 받는다. 

과거 중종이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면, 인조는 왕이 되고자 몸소 정변을 준비하고 앞장선 인물이다. 목숨을 걸고 일으킨 반정은 성공했으나 안으로는 백성의 민심을 잃어 반란이 들끓고 밖으로는 스러져가는 명에 대한 사대를 감행한 대가로 오랑캐라 비하하던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어야했다. 이러한 시국에 인조는 전쟁의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가 청 문물을 접하고 실리외교에 능통하게 되자, 자신이 선왕을 폐위하고 즉위하였듯 세자가 청의 힘을 빌어 반정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반역에 대한 피해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소현세자의 청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보고는 인조의 의심을 확증하게만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일어나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세자빈의 ‘조선의 열반에 대한 꿈’은 인조에게는 다만 목숨과 권력에 대한 위협일 뿐이었다. 이러한 긴장감은 인조로 하여금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통제되지 못한 적개심은 세자내외를 죽음으로 모는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된다.

낯선 타지생활의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지아비와 조선을 내조한, 한 나라의 며느리였던 세자빈 강씨는 죽음 후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시아비 인조의 꿈에 찾아온다. 이렇게 시작되어 극의 전반을 이어가는 인조와 강빈의 대화는 서로를 부정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갈등대화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식 대화법과 같이, 과거를 돌아보며 지나온 세월에 따른 자신의 행동을 역설하는 과정에서 인조 스스로 인식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홀로 외로이 견뎌야 했던 심적 고통을 몸을 결박하던 붉은 천과 함께 무대 위에 풀어놓는다. 

연극은 무능한 임금으로 평가받는 인조를 조선이라는 사회적 맥락 대신 개별적인 시선으로 그의 생을 들여다봄으로써 왕이라는 신분적 경계를 해제하고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인조에게 놓인 마음의 정황과 관객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기억의 경험들 간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이로써 400백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발을 디딘 ‘치유를 권하는 사회’에서 비로소 인조는 힐링을 시도한다. 역사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여 보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붉은 천을 현재로 옮겨와 저마다의 시선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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