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높은 곳 발판 끝’ 하나의 장소에 기반, 두 가지 이야기를 엮은 옴니버스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건설현장 비계 공간에서 펼쳐지고 두 번째 이야기는 폐쇄 예정인 전망대 위에서 벌어진다.
‘1경 노동화호이스트’라고 붙인 첫 번째이야기는 ‘여성인부’로 설정된 재형의 문자 그대로 ‘넋두리’로 채워진다. 도입부만 보면 아마도 어떤 오래된 투쟁 끝에 추락 사고가 있었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신참 재형의 유령이 건설현장에서 통용되는 전문용어를 인용해가며 살아있는 고참 정섭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장면으로 읽힌다. 직접적인 정보가 주어지지 않지만 비계와 호이스트라는 장소성은 상승과 하강, 비상과 추락을 연상시키면서 관객에게 그들 사이에 일어난 중심 사건에 대한 은근한 암시로 작용한다.
‘2경 노동화NO動畵 바벨의 마을에 눈이 내리면’이라고 이름붙인 두 번째 에피소드는 두 인간 사이 세계관의 대조를 보여준다. 관람객과 관리자로 상정된 두 사람의 대화는 세상을 관조한 채 원경으로 삶을 대하는 관람객의 태도와 근경을 보는 방식을 제안하는 관리자의 다른 태도를 종내 대비시킨다. 망원경은 ‘보는 기능 없는 모조품임’이 드러나고 ‘정해진 필름을 영사해서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의 폭로 앞에서 관람객은 외부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 ‘내 방에만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한편의 진혼굿처럼 느껴졌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잘 쓰인 2인극, 세계관이 부딪치는 사유와 유희의 부조리극으로 느껴진다. 의미란 없는 중립적인 세계에 다변으로 대응하는 인간의 고군분투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언뜻 쓸쓸한 연민을 자아낸다. 삶과 세계에 대한 원거리 조망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인물은 삶의 중력을 인정하지만 세계를 직면하기를 권하는 관리인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고립을 택하는 결정을 내린다. 논쟁과공들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귀머거리’가 되어 자신의 할 말만 할 뿐인, ‘대화’ 자체가 ‘독백’이라는 듯각자의 혼잣말들로 채워진 부조리극을 보는 느낌의 극이다.

심사평 : 육체와 정신의 생존 끝까지 대결시킨 수작
응모편수는 줄었지만 수준은 높아졌다. 희곡 쓰기의 어려움은 올해 더 가중됐을 것이라 예상했다. 기본적으로 극작술을 내 것처럼 부리는 데 일정 시간이 걸리는 것에 더해, 올해처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많은 시기에 자신만의 통찰이 있어야 하는 희곡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예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 현재 우리 사회가 아파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속속들이 소재가 침투돼 있었다. 그것을 다룸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췄다. 무엇보다 발로 뛰며 쓴 희곡들, 당장 배우 입에 붙여도 손색없는 대사, 그리고 소재를 대하는 쓰는 사람의 윤리에 대한 고민이 동반돼 아름다웠다. ‘치킨 런’ ‘플랫폼’ ‘마지막 헹굼 시 유연제를 사용할 것’ ‘그토록 찬란한 생일 파티’ ‘유리구두’ ‘걔가 왜 그랬을까’ ‘불면증’ ‘그 남자 흉폭하다’가 그랬다.
최종 논의작은 ‘발판 끝에 매달린 두 편의 동화’와 ‘풍등’이었다. ‘발판…’은 문학적 희곡이 ‘행위’를 지연시키며 ‘수사(rhetoric)’에 빠지는 함정을 가뿐히 건너뛰며, 작가가 깊이 곱씹어본 ‘사유’의 말들로 말의 발화 자체가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풍등’의 공연성은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생존으로 전환해가는 과정을 ‘육체의 생존’과 ‘정신의 생존’ 가운데 어떤 것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끝까지 맞붙임으로써 윤리적으로 탁월했다.
두 희곡 다 좋았다. 우리는 우열 가리기를 포기하고 어떤 선택을 했다. 결과는 ‘발판…’ 이었다. ‘풍등’이 단막보다는 좀 더 긴 호흡의 길이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김철리 연출가· 장우재 극작가 겸 연출가)

장우재, 김철리
당선소감
서랍 속에 두고 읽고 살아도 벅차오르고, 쓰고만 지내도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말(言) 속으로 밀려난 아이였던 저는 구름을 잡아두던 데 쓰던 거울들을 어느새 얼굴 바짝 들이대 면도하고 늘기만 한 흰머리를 뽑는 데 쓰고 있었습니다. 뿌옇게 맺힌 상(像)들이 못마땅해 씩씩댈수록, 떠오른 것들은 뜬구름보다 빨리 이지러졌습니다. 저의 말이 차츰 오므라들고 일그러져 가니, 침묵의 삶 속에 잠겨드는 게 차라리 사람 된 도리 아닐까, 머뭇대고 또 망설이던 게 바로 어제 일입니다. 빠직, 하고 일순 그 참람한 거울을 깨뜨린 건 당선을 알리는 벨소리였습니다. 제 말들의 미약한 떨림이 세상과 진동을 공유할 수도 있겠다는, 작은 가능성을 남겨줬습니다.
하여 옛 임금이 등장하는 작품을 쓴 다음이면 그의 무덤으로 참배를 가고 마는 저, 그 사실에 악의 없이 폭소하던 친구에게 “넌 작가 뒈지고 나면 책도 안 읽을 거냐?”면서 반향 없는 혼잣말만을 되뇌어왔던 그런 저, 이젠 마주 울리는 다른 소리들과 공명하고 싶습니다. 그 전에, 심사위원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제 작품은 몹시 둔중하고 투박합니다. 보다 날카로운 안목 앞에 그 부족함이 훤히 드러났다 생각하니, 지금도 얼굴이 홧홧합니다. 당장 성과보다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을 기대하고 계신 거라고, 부끄럼을 내심 무마해 봅니다. 저버리지 않게, 앞으로 더욱 구르겠습니다.

최상운 △1985년 서울 영등포구 출생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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