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인영 '이 생을 다시 한 번’

clint 2019. 1. 1. 09:18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이 생을 다시 한 번>은 일단 극작의 내부 논리상 타임워프와 알 수 없는 이유로 타임 슬립 하는 기본설정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옥이라면 왜 우리가 독립운동을 했는가?’하는 우리 근현대사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어린 반문을 던진다. 극 중 때는 2018, 채권자에 쫓긴 주인공은 시간이동을 해서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전단을 인쇄하는 등사현장 속으로 던져진다. 여기서 자신이 친일부역자였음을 알게 되고, 그 모든 업보와 인과로 인해 현생의 삶이 망가졌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 항일운동에 중요한 몫을해내려 하는데. 작가는 이 상황을 비약적 논리와 희극적 소동으로 풀어간다. 전생에 독립운동을 했던 광주 학생 진고운과 현생에 주인공의 연인이자 고시원 장수생인 유경의 사연은 n포 세대의 보편적 사연 정도에서 멈춰 생략되어 있다. 단막극답게 전생으로 돌아가 자신의 구업을 멸할 선택행위를 하는 조은태를 중심으로 서사는 달려가고, 그의 운명은 궁극 도입부에 암시되었던 동명이인 조은태, ‘실리콘밸리 가서 완전 성공한 애로 거듭날 것이다. 시간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내용의 논리상 해피엔딩은 보장되어 있는셈이다. 이 연극에는 지난 촛불혁명 이후의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끈 평범한 이들에 대한 헌사 성격이 담겨 있다. 부조리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나름의 조리를 부여해 답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불교적 세계관과 설화적 장치, 시간 왜곡을 통한 희극적소동 등을 과감히 섞어 동시대적 메시지를 버무려놓았다. ‘현생은 전생의 이유 있는 연장이라는 업보 관점을 들여와 역사적 부조리와 동시대 현실의부조리에 대응해 가볍고 경쾌한 답을 전한다. 의미자체가 없거나 의미를 찾기 힘든 역사와 세계 속에서 대단한 누구가 되려 하지 말고, ‘나쁘지 않은 아무나가 되라는 전언 말이다.

 

 

심사평

올해 신춘문예 희곡에 응모한 작품들은 주제며 접근이 새롭다기보다, 대체로 안정된 필력으로 무대에 대한 구체성을 알고 쓴 희곡들이 많았다. 세월호의 비극과 파인텍 고공농성, 동성애를 비롯하여 성과 가족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를 담아낸 이야기들이 눈에 띄었다.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이 생을 다시 한 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위원들은 현생과 전생을 넘나드는 신인작가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필력에 놀랐고, 유희를 바탕으로 한 연극성과 놀이성에 매료되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굴뚝 위의 새는 고공농성이라는 익숙한 테마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인물과 재치 있는 대사 그리고 작가의 세상에 대한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짧은 이야기 안에 주제를 집약시키는 경제적인 극작술도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다른 작품을 기대한다버려진 아이는 순수 창작이 아니라 바리를 재창작한 작품이라 선정에서는 제외 되었지만, 현재성을 강화하며 극을 압축한다면 좋은 희곡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신들의 영웅은 주제의식이 선명한 작품임에도 단막극을 뽑는 취지에 어긋난 장막극이었고, ‘물속의 나무는 은유적이며 초현실적인 독특한 창작의 세계를 느끼게 해 주는 매력이 있음에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며 인물의 캐릭터가 다소 식상한 면이 있었다.

또한 특이한 주제의 작품도 눈길을 끌었는데, 현대인의 탈 인간화 욕구를 신화적으로 접근한 두 편의 희곡 동물원, 같은 제목의 비슷한 주제라는 우연성을 지닌 작품들로, 인간은 어디까지가 인간인가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자성에 대해 질문한 작품이었다. 이번에 투고한 작품들을 버리지 말고 다시 수정하여 시선이 확장되고 부피감 있는 희곡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을 부탁드린다. (한태숙전인철 연극연출가)

 

 

 

당선소감

놀랐죠? 저도 많이 놀랐어요. 이런 작품도 되네요. 신기하고 이상해요. 아직 영글지 않은 난 그대론데 다른 세상에 와 버린 것 같아요. 하루키 세상에 달이 두 개가 뜬 것처럼요.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한 줄 한 줄 커지는 부끄러움에 숨을 곳을 찾게 돼요. (이불을 차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아마 전봇대를 뽑아버릴지도요.) 그래도, 저는 쓰는 동안 흥이 넘쳤어요. 이 작품과 제 손을 잡아준 한국일보, 심사위원님들 감사합니다. 번뜩, 아무래도 이 역사는 제게 명예로운 흑역사가 될 것 같아서 이참에 모두 불러봅니다. 제 삶의 99.9% 지분을 소유하시고 만들어주신 차해진 아버지 한정임 어머니. 존재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행복을 전해주는 동생 가족 차승엽, 박하얀 감사합니다. 바스러지는 제 영혼을 지탱해준 내 사랑들. 정미라, 이수지, 윤지수, 이은애, 윤보라, 김수정, 이경화, 장유미, 김란, 여현주, 조인기, 김보람, 원은아, 오다빈, LJH, 조혜진, 이지윤, 신희숙, 임지민 그리고 작당 친구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장 행복한 시절 세상을 등진 내 그리움, 이은희 안젤라 보고 싶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신 고봉황, 황성연, 김대우 작가님, 꼭 안아주셨던 앤젤라 강(‘워킹 데드의 쇼 러너), 한 번의 만남에도 친절하시던 박해영 작가님 감사합니다. 멀리에서 사랑을 보내주는 한정경 이모, 어디서든 빛나는 동생 신성배와 신재영, 항상 응원해주시는 황관홍 님 황선옥 님, 황진영, 석지호, 황진태, 임선희 감사합니다. 네가 밀면 넘어질게 일으켜달라던 나의 영웅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어둠에서 꺼내주셨습니다. 즐겁자고 하지만 제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뜨는 해에 살아있음을 원망했고 달궈진 불판 위를 맨발로 디디고 버티던 날들... 그래도 기왕 태어난 거 조금이라도 재밌게 살자고, 그렇게 시작한 작품입니다. 어제보다는 아주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다보면 점점 행복해지리라 믿어요. 우리는 모두 안 나쁜 아무나 입니다. 그대가 있어야 세상이 빛나요. 감사합니다.

 

 

차인영/ 1986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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