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매경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밀항>은 일종의 종말론적 세계상 위에 말 그대로 공중 설계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바퀴집 내부를 무대로 삼은 독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9년 당선작 가운데 가장 불투명하고, 모호성지수가 높다. 또한 단막극의 제작환경 속에서 표현 가능한 작품인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든다. 시적인 것과 그로테스크한 것들로 채워진 지시문들, 잔혹동화와 SF 판타지……. 도전적인 텍스트임에는 틀림없다.
극은 시종일관 소녀와 할아버지 사이의 종말유희를 보는 느낌이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녀의 아비 찾기 여정을 관객이 지켜보게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극중 잠시 인용되는 느닷없는 영화 <아비정전>의 그 유명한 (장국영의) 맘보춤 장면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인물이 (엄마 또는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의 동일 모티프로 받아들이게 된다.

희곡 심사평
매일신춘문예에 신설된 '희곡, 시나리오 부문'에 응모된 작품은 첫 공모임에도 128편이나 됐다. 다문화, 청년실업, 코피노, 난민, 재건축과 빈부격차 등 오늘날 우리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현실에 대한 응모자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극적 감각과 글쓰기 훈련이 보이는 작품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한 작품을 중심으로 선별하여 심사를 진행했다.
'밀항'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바퀴 집 내부를 무대로 삼은 독특한 작품이다. 시적인 대사와 몽롱한 사건 처리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무대 위 거대한 바퀴살 내부의 어둠과 대비를 이루며 방사능으로 오염된 미래 밀항자들을 보여준다. 기형이 된 사람들과 아버지를 찾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여정 등 애매모호한 상징은 혼돈을 줄 수 있으나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신선한 무대를 관객에게 경험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심사의 의견이 일치했다. '매미허물'은 임대아파트 앞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으로 가난을 견디는 가정을 보여준다. 매미울음이 가득한 여름날 직장을 잃은 가장, 이중알바로 생활비를 벌며 묵묵히 가난을 견디는 아내,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별다른 계기 없이 구성된 작품으로 매미울음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상반된 해석이 묘한 여운을 준다. '가족입니까?'는 남자 상사의 성희롱에 다르게 대응하는 여직원의 세대 차이와 연대를 그린 작품이다. 인물의 전형성으로 인한 남자상사와 여직원의 단순한 대결구도는 아쉬움을 주지만 자연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와 긴장된 극적 상황을 끌고 가는 힘은 장점이다. '고물성'은 아버지가 주워온 고물로 발 디딜 틈 없는 단칸방에 고립된 딸을 보여준다. 간결한 대사와 단순한 살인, 인물의 변화 없이 극이 끝나는 아쉬움이 있다.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가 눈에 띄게 많았는데,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해 보인다. 다큐멘터리적 소재와 익숙한 상업영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 많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심사위원 : 최현묵(극작가), 김윤미(극작가)

당선소감/ 이현우
코트를 한 벌 선물 받았습니다. 이 옷을 걸친다 해서 제가 다른 누군가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나진 않겠지요. 긴 겨울, 바퀴 집 안에 웅크려 있던 저의 이야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내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매일신문 조두진 기자님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김경주 시인, 극작가님과 안웅선 시인님, 이강백 극작가님, 장성희 극작가님, 故윤조병 극작가님, 김창래 감독님, 황선미 작가님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고맙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 등에 업혀 창신동 골목길을 오르던 날들이, 힘들 때마다 저를 견디게 합니다. 아버지의 넓고 따뜻한 등이 있어서 저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병중에 계신 나의 할머니, 지금은 말을 나눌 수 없지만 의식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불러준 제 이름과 귀한 마음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 순간에도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삼촌, 고맙고 사랑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모두 고맙습니다. 함께 시를 쓰는 나의 가장 소중한 지우들, 교오, 사이, 윤효정, 전수오, 김신혜, 강소연, 채두리, 에게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을 아는 미덕으로 끝까지 배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를 가르치고 일깨워주려는 선의들을 따라 끝까지 갈등하며 걷겠습니다. 결같이 나의 곁을 지켜주는 경세형, 제가 무엇을 하든 따뜻하게 대꾸해주는 오지의 마법사 한규 형과 경희 누나, 맛있는 거 먹자며 불쑥 안부 물어주는 리안 형님, 나보다 망원동을 더 잘 아는 속 깊은 친구 선덕, 이제야 1호점 미선씨, 늘 좋은 극으로 저를 초대해주는 배우 이훈희 (누나), 스무 살에 방 하나를 빌려 함께 시를 썼던 인연들 민국, 용각, 연휘형님, 가슴 답답할 때마다 환기구가 되어주는 친구들 김명진, 안선욱, 이인엽, 이종민, 윤동규, 하승엽, 잘 지내냐며 먼저 안부 물어주는 탁이 형, 진철이 형. 먼 곳에서, 가장 가깝게 손 흔들어주는 친구 안서연 모두 고맙습니다.

이현우/ 1987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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