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천정완 '너의 의미'

clint 2018. 12. 5. 14:50

 

 

 

주인공 덕구는 넓은 집에서 며느리와 손녀딸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은 사업의 실패로 큰 빚을 지고 외국에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며느리는 할아버지에게 남편의 빚을 갚아달라고 부탁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자기를 돈으로만 보는 것 같아 빚을 갚아주지 않는다. 넓은 집에서 할아버지에게는 금붕어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남아 아가씨와의 결혼을 알선하는 회사의 광고 전단을 보게 되고, 덕구는 사진 속의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제, 덕구는 손녀딸 같은 동남아 아가씨와 결혼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데

 

 

 

 

 

연극 <너의 의미>는 이 시대에 약자로 내몰리고 있는 노인들의 욕망과 좌절을 잔잔하고,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놀고 싶어도, 돈도 있어도, 노인 분들이 놀기란 쉽지 않다. 일만 하고 살았으니 노는 방법도 잘 모르고, 이제는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고, 자식들도 놀아주지 않는다. 그 와중에 막상 놀려고 하면 힘도 부친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 혹은 젊은 세대들은 역시 사는 데 너무 바쁘다. 같이 놀기 참 어렵다.

예쁜 아가씨의 사진만 보고도 첫사랑에 빠진 것 같은 황홀함을 느끼는 덕구는 그녀와 결혼도 하고 싶지만, 주변에서 그가 단지 노인이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려고도 안 한다. 노인은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사회의 편견은 그들의 사랑을 오히려 숨어서 몰래 해야 하는 것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노인들의 사랑에 대해 드러내놓고 공론화를 시키는 것은 지금의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작가의 글 : 천정완

늦은 새벽, 가족들이 모두 잠들면, 당신은 몇 가지 안주를 챙겨 거실에 앉습니다. 당신은 요즘 텔레비전을 조명 삼아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서서히 기울어진 등을 가진 당신, 이그릴수록 굴곡이 심해지는 당신의 등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립니다. 술병이 비어갈 수록 텔레비전의 볼륨은 높아집니다. 텔레비전 볼륨에 혼잣말을 숨기는 당신, 당신의 울음으로 온 세상이 북적거립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당신을 짐승이라고 부르는 당신,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고 입을 아주 조금만 움직여 말하는 당신. 당신은 나의 미래입니다. 한 때 남자였던, 누구보다도 격정적인 사랑을 했을 당신, 점점 우리의 말을 잊어가는 당신, 거실에서 무던히 자라고 있는 손녀의 잠을 보는 당신, 편하고 편안한 우리의 밤을, 새벽 동안 지키고 있는 당신, 어떻게 농담을 하며 옆에 앉아야 당신에게 술을 한 잔 따를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