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나수민 '담 너머에서' (10분 희곡)

clint 2018. 11. 23. 17:13

 

 

시작을 따지자면 명절 때마다 친가에서 보냈던 밤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늦게까지 특선 영화를 보고, 불올 끈 채 가족들과 안방에 누워있노라면, 창호지 바른 문너머로 미군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미군 부대가 있는 지역이라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항상 밤늦게까지 밖이 시끄러웠다. 거기다가 할머니 댁 담은 낮고 미군들의 목소리는 커서, 가끔은 그들이 내 머리맡까지 와 있는 것 같았다.

그 기억은 늘 어딘가 무서웠고, 새카맣고, 뜨거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폭력이, 그 기억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왔다. 어째서 그토록 자연스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폭력이 거기 있었다. 그렇게 폭력과 폭력 사이에 외국어라는 담을 세우고, 그 사이에서 생기는 언어의 굴절을 보고 싶었다. 그건 내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일이었다.

이 작품을 읽고, 연출하고, 직접 무대에서 움직여줄 모든 분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런 분들이 없다면 글자는 누워있을 뿐이다. 글자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니까,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강원도 사람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냥 하는 말들이라고 넘기기에는 꽤 구체적이어서 강원도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싶다. 참고로 부모님은 모두 경기도분이시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며 졸업을 무서워하고 있다. 글을 오래 쓰고 싶다. 글이 내가 질려서 떠날 때까지, 나를 떠나더라도 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가면서 끈질기게 쓰고 싶다. 그렇기에 10분이라는 이 시간이 무척 감사하고 소중하다. 10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겨울에 태어나, 겨울을 좋아하고 설거지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얼마 전 전봇대에 자전거를 박기 전까지는 자전거 타는 것도 참 좋아했다. 그 뒤로 자전거와 거리감이 생겼고 아직까지도 서로 서먹서먹해 하고 있다. 글 쓰는 것 역시 좋아하며,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쓸 수 있게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