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동경 '다음 생엔' (10분 희곡)

clint 2018. 11. 23. 17:06

 

 

 

몸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저만 아픈 게 아니었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숨 쉬는 것도 힘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이 참 힘들다고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달랐습니다만 말로 표현할 길 없는 같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한없이 걸려 넘어지는 길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여성들을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었고, 또 스스로도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쓰게 된 짧은 희곡입니다.

엄마와 딸은 동일인물입니다. 엄마가 매번 세상과 부딪힐 때마다 참고 억압했던 자기 안의 목소리를 딸로 끄집어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극은 1인극인 셈입니다. 딸은 죽었을 수도, 혹은 살아있을 수도 있겠지요, 엄마가 귀를 기울이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요. 모호함이 이 희곡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초에 제가 이 희곡을 통해 위로하고 싶었던 여성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희곡이 읽히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 세워지길 바랍니다. 테이프로 돌돌 막은 부엌의 답답함과 음식의 냄새와 먹는 소리, 가스 냄새, ‘사이가 가져올 초조함, 그리고 마지막의 강렬한 햇빛을 관객들이 꼭 느끼길 바랍니다. 이 극을 보고 극장을 나섰을 때,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어떤 감정이 남기를 바랍니다. 그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경

페미니스트. 집순이. 자주 건강하지 않은 몸과 더불어 살고자 노력한다. 알맞게 노동하고 적절히 벌어 잘 지내고 싶어 한다. 대안가족을 꾸리는 중이다.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가만히 얘기 듣는 걸 더 좋아한다. 어렵지만 매일 덜 두려워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