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치워크는 한국의 조각보처럼 여러 조각의 천들을 이어 만든 것이다. 다른 소재, 다른 모양의 천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아름다움을 완성한 것처럼 여성이라는 존재도 그런 것 같다. 외모부터 성격, 지식, 역할까지 사회가 “여자는 그래야지"하고 정해놓은 틀 안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흔히들 말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과거에는 풍만한 몸매의 여성이, 지금은 서구적인 얼굴과 날씬한 몸매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은 항상 여자의 곁을 맴돌며 그 기준을 강요한다. 개별적인 자신은 사라지고 사회 속의 여성만 남는다. 패치워크 걸은 여러 조각을 이어붙인 아름다운 천이지만 결국은 곳곳에 바느질 자국이 있는 상처 입은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그 대상을 마네킹으로 하여 오직 수용하는 존재로 상징화하였다. 자신의 몸이지만 자신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마네킹이기 때문에 저항하기도 어렵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분명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아름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문제부터 역사를 바꾼 사건까지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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