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존 밀링턴 싱 '성자의 샘'

clint 2018. 7. 19. 14:12

 

 

 

성자의 샘은 맹인 거지 부부의 시력이 성자가 눈에 샘물을 발랐을 때 회복된다는 재미있는 발상으로 시작되는 블랙코미디이다. 막이 오르자 남편 마틴 다울은 한 시간, 아니 1분만이라도 눈을 떠서 자신들을 볼 수 있고, 그래서 근동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생긴 남녀라는 걸 확인하게 되면 눈뜬 사람들이 아무리 맹인이라고 흉을 봐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대장장이 티미가 그들에게 한 성자가 기적의 생물로 시력을 회복하게 해준다는 소식을 전하고, 실제로 그 성자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눈을 뜨게 된다. 시력을 회복한 부부는 서로 미녀 미남인 줄 알았던 배우자의 늙고 추한 몰골에 실망하고는 헤어져서 각자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더욱 힘든 것은 그들이 보고 싶었던 세상이 아름답기는커녕 온갖 추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땀 흘려 일해야 한다는 현실에 과거를 갈망한다. 마틴은 눈을 뜬 후의 하루하루가 추악한 나날이라고 투덜거린다. 그는 맹인들이 우중충한 하늘을 보지 않아서 좋고, 자기 아내처럼 코가 빨간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니 좋고, 눈곱이 끼고 눈물을 흘리는 눈을 보지 않아도 되어 좋다고 말한다. 그들의 시력이 다시 쇠퇴하여 맹인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다시 현실이 아닌 환영의 세계에 안착하여 잃었던 행복을 되찾는다. 두 번째로 성자가 나타나 다시 눈을 뜨게 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부부는 완강하게 거절한다. 성자가 아내만이라도 눈을 뜨게 해주려고 하자 남편 마틴은 성자의 물통을 쳐서 물을 엎지른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볼만한 장면은 독신자가 된 마틴이 젊은 아가씨 몰리 번과 애인이 되어보려고 사용하는 현란한 구애의 언어이다. 그는 몰리를 세상의 어떤 남자도 보지 못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녀는 배를 바다에서 끌어들이는 등대라고 부르며 그녀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시력을 준 성자와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고 말한다. 몰리는 한동안 그의 언변에 도취되어 정신을 못 차리다가 마틴이 팔을 잡아당길 때 깨어나 그의 유혹을 강하게 거부한다.   

성자의 샘의 기원이 되는 이야기의 기초자료는 1898년 싱이 애런제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맹인 치료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샘을 보게 된 일화라고 한다. 그가 제도를 여행하면서 채집한 일화 중에는 이 작품의 재료가 되었을 법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맹인 아들을 둔 어떤 어머니가 꿈에 기적의 치료효과가 있다는 샘을 보고 본토에서 애런 제도까지 배를 타고 찾아와 기도한 후 생물로 이들의 눈을 씻기자 아들이 그 즉시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존 밀링턴 싱은 18714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이 가까운 라스판함에서 존 해치와 캐슬린 싱 부부의 4남매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부친을 일찍 여윈 싱 가족은 위클로우 카운티의 외할머니 동네로 이사를 하고, 그곳에 정착하여 성이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할 때까지 거주한다. 이후 위클로우 카운티는 싱에게 정든 고향처럼 인식되었고, 집을 떠나 프랑스와 독일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이 되어 돌아올 경우 어김없이 이곳으로 돌아와 여름을 지내곤 했다. 성이 소년일 때 보인 첫 번째 재능은 음악이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음악학교에 등록하였다. 성은 언어와 문학에도 취미가 있었으며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게일릭 어와 아일랜드의 고대에 관한 공부를 하였다. 칼리지를 졸업한 후 싱은 독일 · 이탈리아 · 프랑스에서 문학과 예술을 공부했으며, 문학에 점점 더 깊이 몰입하고 희곡 습작을 시작하였다. 스물세 살이 되는 1894년에 그는 음악에서 문학으로 전향하여 시와 희곡을 쓰는 등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돌입한다.

싱에게 문학, 특히 극작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윌리엄 버트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와 레이디 그레고리(Lady Gregory)를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1896년 처음으로 만나 아일랜드의 전통적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예술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는데 그 운동의 환으로 애비극장을 본부로 하는 신극운동을 시작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싱에게 예이츠가 한 말은 그의 드라마의 경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파리를 포기하게나. 라신느를 읽어서는 아무것도 창작하지 못할 걸세. 그리고 자네가 아서 시몬즈만 한 프랑스 문학 비평가는 될 수 없네. 애런 제도로 가게. 거기서 그곳 사람인 것처럼 살게. 한 번도 표현된 적 없는 삶을 표현하게"

예이츠가 싱에게 준 메시지의 의미는 첫째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세계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작품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아무도 쓰지 않은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싱은 18985월 처음으로 한 달간 애런 제도의 이니시모어 섬과 이니시만 섬을 방문하고, 그 후 18991902년까지 총 5년에 걸쳐 4개월 반 동안 세 개의 섬을 두루 다니며 민담과 전설 등 창작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 자료집 애런 제도가 예이츠의 권유로 1907년 출판된다. '서부지방 제일의 사나이‘ ’성자의 샘등의 작품의 기초 자료는 이 책에 소개되어 있어 싱의 극작과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당시에 싱이 발표하고 애비극장에서 공연한 작품들은 아일랜드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주제와 언어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기도 하고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였지만, 우수한 작품성으로 번역되어 다른 나라에서 공연되기도 하였다. 싱이 호지킨병으로 요절하였을 때 예이츠는 싱의 연극운동에 대한 기여를 친정하며 애비극장은 싱의 극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존 밀링턴 싱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사항 중 하나는 그의 기독교 신앙의 포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싱의 자전적 기록에 의하면 그가 기독교 신앙을 절대 선으로 믿지 않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때였다. 그 이전까지 싱은 치혹의 개념과 자신의 죄악에 괴로워하는 수줍음 많고 소극적인 소년이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책에서 인간의 손과 새, 박쥐의 날개의 유사성을 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싱의 세계관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의 싱은 의심이 전혀 없는 완벽한 기독교인 이었으면 무신론자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신은 자신이 읽은 책을 집에 두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싱보다 20년 정도 후에 활동을 한 손 오케이시(Sean 0’Casey)의 작품에도 19세기말, 20세기 초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일랜드 사회, 특히 종교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인물들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