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닐의 『털북숭이 원숭이』(1922)는 본격적인 미국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연극은 아직 독자적인 색깔을 지닌 작품을 생산할 전통과 실험 성을 가지지 못했으며, 유럽연극을 모방 내지 수입하여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멜로드라마나 재미 위주의 가벼운 희극 공연으로 엔터테인먼트의 수준에 머물던 미국 연극계에 실험정신으로 가득 찬 오닐의 등장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오닐이 『털북숭이 원숭이』를 발표할 당시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표현주의가 한창 풍미하고 있었고, 시 · 소설 · 연극을 비롯한 미술 분야에서 비사실주의적 경향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그림 〈절규〉는 격렬한 내면감정의 회화적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황제 존스』와 『털북숭이 원숭이』를 집필할 당시 오닐은 게오르크 카이저(Friechich Carl Georg Kaiser, 1878-1943)의 『아침부터 자정까지』와 『칼리가리 박사의 캐비닛』 등 독일 표현주의 연극과 영화를 섭렵하였으며, 표현주의극의 틀을 빌려 자신의 독자적 정신세계를 세련되게 극화하였다. 작가의 생애를 통틀어 오닐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내면의 진실을 파헤쳐 극화하는 다양한 표현주의적 기법이라는 점에서 『털북숭이 원숭이』를 비롯한 그의 초기작품의 경향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표현주의 연극은 스웨덴의 천재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1849-1912)의 몽상극의 영향을 받아 독일에서 싹튼다. 외부세계의 현실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자연주의 예술가들에게는 추상적 분위기, 상징, 또는 내면세계의 변화무쌍한 양상을 무대 위에 재현하는 기법을 발견하는 것은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스트린드베리가 『다마스커스를 향하여』, 『몽상극』, 『유령소나타』 등의 작품에서 환각의 세계를 재현하였을 때, 연극은 비로소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유연성과 초현실성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고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 선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넘나들 수 있다.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따라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두 인물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유진 오닐의 『털북숭이 원숭이』는 대서양횡단 여객선의 화부실 노동자의 삶을 그린 희곡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화부실 노동자들의 대표 격인 양크가 단순무식한 노동자에서 자기 주변세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세상 주유를 거쳐 철학자로 태어나는 변신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주인공 양크는 유아기적 자기몰입 상태에서 거의 동물처럼 살다가 밀드레드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자아의식에 눈을 뜨고 비로소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가 사유를 통해 얻은 결론은, 인간은 동물도 천사도 아닌 중간자로서 두 세계의 사이에서 귀속감을 상실한 채 방황하는 고독한 존재이다.
양크가 일하는 원양여객선은 사회의 계층구조를 상징하는 은유이며 양크는 그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 속한다. 하지만 양크는 화부실이 세계의 중심이며 자신을 비롯한 화부들은 배, 즉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갑판 위의 승객들에 비해 엔진에 석탄을 공급해서 배가 움직이게 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배의 주인이며 세상의 에너지원이다. 양크가 산업혁명과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대두된 기계문명의 세대라면 패디는 돛과 바람에 의존하는 범선의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 범선의 선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패디는 인간과 배와 자연이 하나가 되어 노동이 여유와 즐거움이었던 낭만적 항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노래를 부른다. 이제 나이가 들어 젊은이들처럼 강도 높은 노동을 감당할 수 없는 그에게 양크가 찬양하는 기계와 석탄이 만드는 힘과 속도는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를 긍정하고 기계문명을 찬양하는 양크에게 과거를 노래하는 패디는 패배주의자이며 경멸의 대상이다.
밀드레드라는 사장 딸의 방문은 양크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사건이다. 양크는 배 밑창의 화부실에서 일하면서도 갑판 위의 부자승객들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을 배의 짐짝에 지나지 않는 의미 없는 존재들로 간주했다. 하지만 어느 날 홀연히 순백색의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난 밀드레드가 그를 보자마자 “날 데려가줘요 아 더러운 짐승”이라 외치고 사라진 후, 양크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패디는 그가 식사를 거르면서 사색에 빠진 이유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 비아냥거렸고, 롱은 사회주의자의 관점에서 자본가에 의한 무산자의 착취사건으로 상황을 해석하여 투쟁심을 부추기려 하였다. 밀드레드 사건은 무의식 상태의 동물처럼 보이던 양크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아가 자아의식을 가진 현대인으로 탄생하게 만들었다.

배를 떠난 양크는 뉴욕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그것은 지리적 여행임과 동시에 정신적 여정이다. 양크의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당한 모욕을 되갚는 것이었고, 그 방법으로 밀드레드의 아버지 회사를 폭파하고 세상을 뒤집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롱이 주장했던 사회주의적 혁명이나 투쟁과 다르다. 양크는 혁명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가장 귀중하게 생각한 것은 대중사회 속에서 상실하기 쉬운 개인의 귀속감이다. 이 작품에서 양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belong’이다. 그가 그 말에 집착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사회적인 데 있지 않고 소외감의 극복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5번가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하고 싶어 했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했고, 남들이 타려는 버스를 놓치게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털북숭이 원숭이』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감금의 이미지를 반복시켜서 양크의 운명을 사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본질적인 인간조건으로 제시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암시한다. 1장의 화부실은 벙크 침대를 둘러싼 강철기둥들에 의해 회부들이 철창에 갇힌 원시인들처럼 보인다. 뉴욕시내에서 수많은 뉴요커들을 만났을 때 양크가 맛보는 소외감은 그가 군중 속에서도 고독하며, 그것은 바로 정신적 감옥에 갇혀있음을 의미한다. 양크는 자신과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산업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도 배척당하고 내쫓겨서 자신은 어디에 가든 외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 양크가 도착하는 곳은 자신과 닮은 고릴라들이 갇혀 있는 동물원이다.
롱의 의도와 달리 양크가 뉴욕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진리는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이 아니다 양크는 겉으로는 밀드레드의 아버지의 회사를 폭파하겠다고 벼르지만 그의 마음속에 싹트는 것의 존재 자체의 쓸쓸함이다. 그가 중요한 순간마다 belong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역으로 그가 그만큼 귀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워한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그의 귀속감 상실은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피투성’(避投性), 즉 존재로의 내던져짐에서 오는 것이다. 피투성은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일정한 세월 동안 살아가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실존주의 철학의 명제중 하나이다. 시간 속에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그 운명의 틀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작품의 장마다 작가가 감금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삶이 바로 존재의 감옥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상기시키려는 의도이다.

양크는 1장에서 네안데르탈인을 연상시키는 고릴라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묘사된다. 작가의 의도는 그의 외모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식수준도 자의식이 없는 동물적 상태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가 밀드레드라는 여성에 의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사색하는 인간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그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이 되는 것은 지능의 발달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적 존재방식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양크가 동물원의 고릴라에게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고 “주여, 나는 어디에 끼어들어가야 하나요?"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귀속감 상실을 말하는 것이며 나아가 끊임없이 방황하며 고뇌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환기시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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