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호프는 이 작품을 ‘친절한 나리의 삶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라 칭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체호프는 배부르고 부유한 자들을 풍자적으로 조소하였는데 그들의 삶에서 주된 것은 여흥과 신경을 자극하는 여가활동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쓴다. 청원자의 가난한 처지를 자비로운 나리는 결코 동정하지 않으며 훌륭한 아가씨와 수다 떨 수 있다는 사실만이 즐거울 따름이다. 배부르고 냉담한 숫양, 즉 자비로운 나리는 은행의 요직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심각한 일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 계산하는 일에는 게으를 따름이며 다만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만 궁리하는 인물이다. 그는 희고 보드라운 손에 반지로
치장하고 옷을 잘 차려입었으며 맞장구치는 표현을 자주한다. 그는 교양 있고 정중하며 특히 매력 있는 아가씨와 대화를 나눌 때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다정다감하다. 그는 팔체바가 찾아왔을 때부터 그녀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상류 사회의 지인들에게 전할 우스갯소리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친절한 나리의 대척자로서 체호프는 팔체바를 내세우고 있다. 순수한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인생 역정에 대해 진솔하게 말한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에게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한 가십거리로 취급당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를 진정으로 믿고 모든 것을 말한다. 이 사랑스런 여인을 향한 체호프의 연민은 자비로운 나리의 변덕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하는 데서 느낄 수 있다. 팔체바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일생에서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높은 관리와의 만남에 앞서 경험이 없는 젊은 여인은 노예근성을 털어내기가 힘들다. 호화로운 세간과 하인들, 대화 상대의 위엄 있는 태도에 그녀는 단숨에 억눌려 허상 앞에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정중한 환대와 차 대접, 그리고 대화 상대의 다정한 목소리에 그녀는 마음을 열고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녀의 인생은 소박하고 진실 되어 감출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행복을 향한 길에 단 하나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난이다. 장면이 끝나갈 때까지 그녀는 왜 이 부유한 남자가 진작 잘못 찾아왔다고 말을 하지 않았는지 한동안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단지 자신이 조롱당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것이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안톤 체홉 단막 '기쁨' (1) | 2018.07.04 |
|---|---|
| 안톤 체홉 단막 '대소동' (1) | 2018.07.03 |
| 안톤 체홉 단막 '이반 마트베예비치' (1) | 2018.07.03 |
| 안톤 체홉 단막 '아버지' (1) | 2018.07.03 |
| 안톤 체홉 단막 '부인들' (1) | 201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