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온달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늘 다니던 길을 오늘따라 방향을 잃고 헤맨다. 어둠 속에 비치는 불빛을 찾아간다. 산 속의 외딴 집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지낸다. 깨어보니 꿈이다. 이튿날 온달의 집에 평강공주가 나타난다. 정치싸움의 얽힘에 밀려 비구니가 되기 위하여 왕궁을 빠져나오는 길이다. 그녀를 인도하는 대사에게서 지나다 들른 이 집이 온달의 집임을 알고 그녀는 놀란다. 순간 그녀의 심리 속에서 착각이 일어난다. 그녀가 어렸던 시절 부왕이 그녀를 어르기 위해서 하던 말, 보채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낸다던 말, 그녀는 어지러워진다. 길을 재촉하는 대사에게 좀더 지체하자고 조르는 제 마음을 그녀 자신도 알 수 없다. 산에서 돌아온 온달을 본 순간 그녀의 심리 속에서 다시 한번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녀는 온달과 결혼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온달은 고구려의 유명한 장군이 돼 있다. 물론 궁중에 다시 불려온 공주의 남편으로서. 남편 온달이 싸움터로 나간지 한 달, 공주는 집에서 어쩐지 불안한 새벽에 홀로 앉아 있다. 자꾸 불안하다. 온달의 망령이 나타난다. 죽은 자의 입에서 그녀는 진실을 듣는다. 오직 한 갈래 흐름뿐이었던 온달의 마음을. 그녀는 남편의 시체가 있는 싸움터로 달려간다. 정권싸움은 다시 불붙는다. 공주의 재차의 탈출, 사랑하는 이의 어머니를 모시고 여생을 지내려는 그녀의 계획을 운명은 허락치 않는다. 사랑은 어제 같은데 시간은 이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가 만들지 않은 운명과 싸운 총명한 여자는 사랑과 옛 마당에서 죽는다.
삼국시대 온달설화에 바탕을 둔<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이야기 중심이 되는 종래의 작품 형식을 떠나 오직 만난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만남의 미학’을 추구해본 작품이다. 몽환적이면서 아련한 시정을 노린 무대장치와 의상, 그리고 공간처리는 지금까지의 사극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던져주기도 했다. (동아일보 1973년 9월 7일)
올 가을 국립극장 무대를 장식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첫날부터 밀려든 관객으로 입석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을 이뤘다. 빈틈없이 자리를 잡고 있는 관객들로 해서 조성된 객석의 흥분이 무대에까지 파급돼 연기자들의 걸음에도 약간의 열기가 더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달모 이외의 인생은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박정자의 수굿한 자세와 약간 거친듯했으나 박력있는 성격으로 대사역을 이끌어간 조명남, 그 덧손질과 함께 이번 무대의 장점으로 지적해 둘 수 있을 것 같다. … 우리말과 뜻이 담겨진 좋은 작품을 대하는 기쁨이 이번 무대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신문 1973년 9월 7일)
한낱 옛날 이야기에 그칠 온달설화를 가지고 인간체험의 한 원형을 유출해 내보려던 작자의 의도는 연극이란 궁극적으로 한 타인을 만나 그로부터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총화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드라마’의 바로 그 본질로 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생은 합리적인 해석과 이성적 판단만으로 파악될 수 없는 생 고유의 논리를 갖는다는 주제가 고도로 압축됨으로써 이 작품은 우리나라 희곡에서는 좀처럼 대하기 어려운 거의 탈속된 분위기를 갖는다. 그것은 특히 밀도 높고 고양된 대사로 해서 강화된다.… 다만 이들 생의 신비감을 고양시키는데 초점을 둔 연출의 감각이 구제를 해주며 의상은 독창적이었다. (중앙일보 1973년 9월 11일, 한상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외면상으로는 최인훈씨의 작품세계에서의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그곳에 표현된 불교적 이념의 분석은 초기에 최인훈씨가 깊은 관심을 내보인 프로이드적 세계, <광장> <회색인>에서 보여준 불교적 삽화 혹은 한국정신사의 기둥으로서의 불교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불교적 인과관계를 창조하기 위해 낡은 인연의 고리를 자른다는 왕자의 두 태도를 보여준다.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일까를 최씨는 뚜렷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온달’을 잃은 공주와 인도로 가는 배를 잃은 왕자를 통해 그 이차론의 한계와 종합에의 가능성을 보여줄 뿐이다. (김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詩的인 제목과 바보 온달 이야기, 그러고 감은사 전설의 劇文學的 構成이 구성 그대로 공감을 널리 얻지 못했고 『만남의 美學』으로서 그 題名만이 유행어가 되다시피 되었다. 나는 이 공연에서 처음으로 劇文學의 詩的 감각을 연극을 통해 체험했다. 연극 자체로서는 잘 다듬어진 것이 아니었고 온달 역할이나 평강공주 역할의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한 것을 보면 연기력들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文學的 상상력을 무대가 깼다고 해서 불만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劇詩처럼 사로잡던 대사의 마력과 그 대사를 따라가며 스스로 눈을 감고 상상력으로 키워나갔던 무대형상은 감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최인훈이 劇作家로서 보여준 그 이후의 連作들도 어쩌면 무대 공연보다는 오히려 읽어나가면서 스스로의 상상력 속에서 그려 나가도록 구상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우리 演劇에서 처음 겪은 그런 감동이 언제나 이 作品을 잊지 못하게 한다. - 이상일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태석 '부자유친' (1) | 2017.12.08 |
---|---|
오태석 '여우와 사랑을 (1) | 2017.12.08 |
오태석 '어미' (1) | 2017.12.08 |
오태석 '한만선' (1) | 2017.12.08 |
오태석 '내사랑 디엠지' (1) | 2017.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