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1300년경에 쓴 관한경(關漢卿) 만년의 작품. 4막. 불행한 젊은 과부 두아가 불한당 장여아(張驢兒)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그의 간계(奸計)로 시부(媤父)의 살해 혐의를 뒤집어쓰고 살인죄로 사형당한다. 목이 떨어져 뻗쳐오르는 피가 한 방울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펄럭이는 깃발을 물들여 두아의 무죄를 증명한다. 이 작품의 옛 전설에서 소재를 얻은 기적의 묘사는 현실세계에서 모든 방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애타는 호소로서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또 당시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에 정면으로 대결한 작품이며, 봉건사회에서는 절대적 존재인 임금까지도 매도하는 격렬한 가사(歌詞)로 학대받는 사람들의 분노를 노래하였다.
원이라는 나라는 몽고족이 중원에 들어와 온 중국을 지배했던 나라이다. 원잡극은 외족의 지배라는 독특한 조건 아래 1백 년도 못 되는 짦은 기간 중국에 갑자기 나타났던 중국문학 사상 전무후무한 연극의 한 종류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나온 아림이 알려진 잡극의 작가는 2백여 명이나 되며, 알려진 잡극의 극본 수는 대략 7백 3,40종이나 된다. 이밖에도 시대와 연극의 성격상 이름을 남기지 않은 작가와 전혀 제목조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작품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이중 완전한 극본이 전하는 잡극은 208종뿐이며, 잔곡이 남아있는 29종을 합친다하더라도 모두 237종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작가들을 보면 거의가 벼슬도 하지 못한 무명인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가 명작이라고 읽는 작품들은 비교적 글을 많이 읽은 사람들에게서 쓰여진 작품일 터인데도, 마치원이 한 성의 무제거, 관한경이 태의원윤등의 어떤 벼슬인지 알기도 어려운 낮은 벼슬을 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잡극은 본시 민간 예술이었다는 것을 존재로 한다면, 지금까지 이름도 아려지지 않은 무수한 작가들이 수많은 작품들을 창착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원잡극은 민간에서 발전한 연극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서민들의 생활을 반영하고 속된 표현이나 속어도 많이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연극은 몽고족이 중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지배자들을 위한 오락용으로 쓰여서, 작품 내용뿐만이 아니라 음악 무용 및 배우들의 의상이나 화장 등에 이르기까지 이족 귀족의 냄새도 함께 느껴지게 되었다. 따라서 문장이나 구성에 다른 중국문학 작품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자연스럽고 생동하는 일면이 있기도 하지만, 노래나 극의 구성에 부자연스런 일면도 느끼게 한다.
줄거리

기원 13세기 원나라때에 생활한 관한경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박식하고 다재다능 했습니다. 그는 시읊기 피리불기, 현악연주, 무용, 바둑, 수렵 등 각종 기예를 모두 즐겼습니다. 관한경은 오래동안 대도(오늘의 북경)에 거주하면서 일찍 황실의 주치의로도 있었지만 의술에 대해서는 별로 취미가 없어 극본을 쓰는데만 열성을 보였습니다.
당시 원나라 민간에는 "잡극"(雜劇)이라고 불려지는 연극이 아주 유행했습니다. 잡극은 내용면에서 민간설창의 이야기를 풍부히 하였고 사회 현실을 널리 반영하였으므로 고관은 물론 백성들까지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관한경의 작품은 고급 관리들의 심심풀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의 질고를 널리 반영하였습니다. 몽골족들이 집권했던 원나라때는 전국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들을 하등인으로 간주한 원인으로 계급간 갈등과 민족갈등이 아주 심각했습니다. 하여 백성들은 아주 비참한 나날을 보냈어야만 했습니다. 관한경은 사회 최하층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아주 동정했습니다. 그는 관직을 사임하고 사회 최하층에 내려가 백성들의 생활을 알아보고 잡극이라는 예술 형식을 빌어 현실의 암흑면을 폭로한 동시에 또 자신의 사회이상을 기탁했습니다.
시민들의 생활과 민간 언어를 익숙히 장악한 관한경은 탁월한 예술 수양까지 겸비해 그의 작품에서는 항상 활력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당시는 연극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직위가 아주 낮은 편이였습니다. 관한경은 자주 연극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접했는데 심지어 친히 감독을 맡거나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작품에서 떳떳하고 강직한 자신의 인격을 "찌고 삶아도 익지 않고, 때려도 상하지 않으며 튀겨도 터지지 않는, 동으로 제조된 완두콩"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의 필끝에서는 항상 억압받는 노동인민들의 정직하고 용감하며 고유한 반항정신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비극 "두아원"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잡극 "두아원"은 젊은 여인 두아의 불우한 운명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두아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였는데 가난에 쪼들리던 두아의 아버지는 두아를 채씨성을 가진 노파집에 민며느리로 팔았습니다. 그후 병으로 남편을 잃은 두아는 시어머니와 운명을 같이 하면서 살아가게 되였는데 두아는 억울하게도 독약으로 살인했다는 무함을 받게 됩니다. 안건을 심사하는 관리는 뢰물을 받아챙긴후 두아에 대해 혹독한 고문을 들이대면서 자백을 강요하지만 두아는 시종 굴하지 않습니다. 두아의 효성을 파악한 판사는 두아 앞에서 시어머니를 구타합니다. 선량한 두아는 시어머니가 당하는 곤혹을 눈뜨고 볼수 없어 억울함을 머금고 모든 죄명을 인정합니다. 결과 두아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두아는 조금도 굴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형장에서 "땅이여, 선악도 구분 못하면서 어찌 땅이 되였소. 하늘이여,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거꾸로 알면서 어찌 하늘이 되였소."라는 말로 분노해 통치자들을 질책합니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두아는 하늘을 가리키며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내가 죽은 후 큰 눈이 내려 내 시신을 덮어주고 3년 동안 크게 가물어 내 원한을 분명히 보여 줄 것이다." 과연 그후 두아의 말은 현실로 되였습니다. 6월의 혹서에도 불과하고 두아가 처형된후 얼마지나지 않아 하늘땅이 캄캄해지더니 큰 눈이 쏟아졌고 그뒤 3년간 크게 가뭄이 들었습니다.
관한경은 평생 60여편의 연극을 창작하였는데 지금까지 전해진것은 18편입니다. 걸출한 연극작가 관한경은 전형적인 인물형상을 부각하는데 심혈을 몰부었습니다. 그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활동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당시와 후세의 연극 창작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관한경은 "원나라 잡극의 비조" 또는 "동방의 쉑스피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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