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송기원 1인극 '늙은 창녀의 노래'

clint 2016. 10. 5. 08:04

 

 

 

마흔이 넘은 늙은 창녀는 점잖으면서도 어딘가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손님을 맞자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손님의 청으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사창가의 얘기를 나누다 문득 지나간 세월을 떠올린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들어 부쩍 처녀적의 모습이 떠오르고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
한참을 기구한 팔자에 대한 하소연을 하다가 술기가 오르자 여자는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녀는 꽃다운 나이에 방직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가 어떤 사내의 꾀임에 빠져 사창가로 팔려 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망쳐 놓은 그 남자를 오히려 사랑하게 되고, 몇년 후 그와 살림을 차린다. 잠시나마 남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시간이 지나 아기를 갖게 되지만 창녀의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사내가 결국 떠나버리고 혼자서 아이를 낳게 된다. 그러나 아기로 인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느끼는 것도 잠시, 그녀는 사산하고 만다. 여자는 아기를 잃은 슬픔으로 실성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차츰 회복되고 다시 창녀의 삶을 살게 된다. 이야기를 들어주던 손님은 그녀의 사랑이 순결하다고 말하고 여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한다며 도리어 화를 낸다. 그러나 그녀가 비록 보잘것없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지만 늙고 병든 몸을 찾아준 손님에게 고마워하고, 어두운 표정의 손님을 위로해 주는 등 여전히 순수한 마음만은 간직하고 있다. 고향이 없다면서 허망한 눈물을 흘리는 손님을 보면서 여자는 고향이 있지만 갈 수없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한스러워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손님과 잠자리에 들때 창밖에는 뿌연 달빛만 무심히 쏟아지고 있다. 달빛을 받으면서 여자는 결국 하염없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작가 송기원이 "늙은 창녀의 노래는 사랑의 완성이다."라고 극찬을 했듯 양희경의 늙은 창녀의 노래는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인생의 노래이다.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리는 양희경의 늙은 창녀의 노래는 여배우 시리즈 중 유일한 "국산"작품이다. 누추하기 짝이 없는 방 앞에서 손님을 부르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 목포의 히빠리 골목에서 몸을 파는 걸쭉한 사투리의 주인공은 20년의 한을 한 잔의 술과 함께 낯선 손님에게 풀어 놓는데...
가고픈 고향을 꿈속에서나 그리는 늙은 창녀의 서글픔은 양희경이라는 인물에게서 눈물로 승화된다. 남도 사투리로 엮어지는 대사, 뛰어난 노래 솜씨, 내면에서 나오는 연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발길을 묶어 놓는 이번 드라마는 진한 감동을 갈구해 온 관객들에게 쉽게 흩어질 수 없는 순수와 진실을 전해 주었다.

 

 

 


송기원

1947년 전남 보성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현 중앙대학교 대우교수.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경외성서’,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회복기의 노래’ 당선.소설집 ‘월행’(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청산’(1997),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 ‘사람의 향기’(2003).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 날 때’(1983), ‘마음속 붉은 꽃잎’(1990)을 펴냄. 어느 여성잡지에 ‘작가 송기원의 뒷골목 기행’이라는 기행문을 연재하면서, 동쪽 끝 거진에서 남쪽 끝 거문도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뒷골목을 헤매고 다니며 그 뒷골목에 자리잡은 뒷골목 인생들을 만났다. ‘늙은 창녀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인 늙은 창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를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또한 혐오하게 느껴온 자신을 새롭게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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