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신은수 '운현궁 오라버니'

clint 2016. 9. 29. 20:09

 

 

 

1930년대 초 어느 봄날,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이우가 방학을 맞아 그를 보좌하는 요시나리와 함께 운현궁을 찾는다. 혼기가 찬 이우는 조선 왕실과 일본 여자를 혼인시키려는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 여자와의 혼사를 권유받는다.

조선은 모더니즘의 문화가 거리 곳곳에 묻어나고 일본 문물은 왕실에까지 들어와 철없는 아우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일본 황족의 딸 가네코가 이우에게 선보이기 위해 낙선재에 머무는 동안, 이우는 급변하는 조선의 상황에 고민하며 그녀와의 만남을 미룬다. 형 이건은 일본 황족과의 결혼은 운명이라 말하고, 박영효는 호시탐탐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손녀를 이우와 혼인시킬 궁리를 한다. 조선은 희망이 없다며 비관하던 형 이건은 일본군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주로 떠나고 이우는 무언의 압력에 결심을 하는데...

작품은 권위를 잃은 황실에서 거주하는 이우의 동생 해원과 이광, 비운의 역사에 정체성을 잃어가는 형 이건, 시대 정세에 발맞춰 권력을 잡으려는 친일파 박영효, 시대의 흐름과 인간적 신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요시나리 등 역사적 혼돈과 시대의 일상을 담아냈다. 극의 무대가 되는 운현궁을 망자(亡者)들의 공간으로 해석, 희미한 역사 속 일상의 편린들을 불러 모은다. 백색 비단이 뒤덮인 무대는 쇠락하다 못해 하얗게 탈색된 망자들의 기억의 공간을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  

: 1930년대 초반 봄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만주국 건국, 1934년 만주국 황제 대관식, 1937년 중일전쟁 등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이 수행되던 시기. 또한 일본의 문물과 문화가 조선의 일상으로 깊이 들어와 모더니즘 문화가 싹튼 시기다. 이즈음 민족개량주의자들은 친일파로 변절하여 대동아 공영에 적극 참가하는 태도를 보인다.

 

: 운현궁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자 흥선 대원군의 사저. 대원군 정치활동의 근거지로 유서 깊은 곳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 노락당(老樂堂)과 대원군이 사랑채로 사용하던 노안당(老安堂), 안채 기능을 담당하던 여자들만의 공간인 이로당(二老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성기 때는 운현궁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4대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후문 하나만 남아 있다. 극 중 이우는 운현궁의 4대 주인으로, 방학을 맞아 궁으로 돌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우의 운현궁에서의 한때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이우의 형제들과

박영효, 이방자, 요시나리, 한상궁 등 여러 인물들이 어우러지면서 나라를 잃은 황족의 애환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우는 의왕의 둘째 아들로, 흥선 대원군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 운현궁의 네 번째 주인이 된다. 그가 생을 마친 곳이 히로시마이며 그의 장례식이 조선 해방의 날과 같은 것을 보아도 그의 삶에 담긴 역사의 아이러니를 알 수 있다. 1933년 청년 이우가 방학을 맞아 돌아간 운현궁은 호떡과 모찌’, 어린 동생들의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다루마상가 고론다’, ‘궁 안에 핀 오얏꽃(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꽃)과 담장 밖으로 날리는 벚꽃등이 혼재되어 있다. 이우가 느끼는 시대적 어지럼증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시대적 혼란과 어떻게 닮아있으며 어떻게 차별될지 작품을 보며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2009년 제10회 옥랑희곡상 수상작인 운현궁 오라버니는 신은수 작가의 섬세하고 간결한 문체가 매력인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픽션이 묘하게 뒤섞여 있고, 캐릭터와 사건보다는 정서와 심리적 갈등에 무게를 두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퓨전사극이나 1930년대 소시민의 일상을 다룬 시대극과는 변별된다. 연출가 이성열은 이 작품의 무대인 운현궁을 황성옛터의 이미지로 상정, 쇠락한 황실의 일상과 혼재된 시대에 고여 있는 역사적 흐름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백색 비단이 뒤덮인 무대, 운현궁 담장 안과 밖의 이질적인 문화, 현대적인 영상과 시대 음악이 어우러진 새로운 양식의 시대극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연극 운현궁 오라버니2009 10회 옥랑희곡상 당선작으로 신은수 작가의 작품이다. 신인답지 않은 뚝심과 독특한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신은수 작가는 이 작품은 당시 원력이었던 일본에 붙어 안위를 보장받는 조선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권력이라는 대상에 붙어 보편적 도덕성과 보편적 인간애를 상실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한 바로보기다고 말했다. 또한 이 극에서 이우는 20대 초반의 순수한 청년이다. 조선은 시궁창이라고 말하는 형 이건의 말에 이우는 형님, 그래도 우리 같은 조선인입니다로 대응한다. 그러나 이우도 같은 조선인에 의해 시대의 혼란과 상처를 경험한다.”고 밝혔다.

 

 

 

 

신은수

197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졸업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독부문 당선

2007년 서울연극제 신작희곡공모 선정

2008년 거창국제연극제 세계초연희곡공모 대상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재현 '미국에 산다'  (1) 2016.10.04
이재현 '아! 안평대군'  (1) 2016.10.04
김낙형 '토란 극'  (1) 2016.09.28
황진주 '사라-0'  (1) 2016.09.28
김재엽 '여기, 사람이 있다'  (1) 2016.09.27